[TV 좀 봅시다] 8. 유시민-전원책 콤비가 주는 카타르시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드라마 ‘도깨비’ 공식 포스터. tvN 제공

최근 몇 달 동안 이상한 증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상 무엇보다 TV를, 특히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사랑했던 내가 그 어느 프로그램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몇 분마다 연신 리모컨 버튼을 눌러 대고 있다.

아니다, ‘좀’ 이상해진 게 아니다. 뭘 봐도 재미가 없고 심드렁하고 멍한 증상이 계속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장안의 화제라는 드라마 ‘도깨비’를 10여 분 보다가 돌려버렸다. 공유와 이동욱이 등장하기만 해도 눈이 부실 지경인데,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왠지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 ‘그래, 네가 칼 뽑아줘. 그럼 되잖아’라고 생각하며 채널을 돌렸다.

시즌마다 챙겨 봤던 ‘삼시세끼’도 유독 이번에는 거의 안 보고 있다. ‘에릭 요리 잘 하네’ 생각하고 또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매일 저녁 ‘뉴스룸’ 챙겨 본다는 사람들도 주변엔 많은데, 왠지 모르게 뉴스도 오래 못 보겠다. 슬프고 짜증난다. 기자들이 나와서 앵커와 주고받는 문답도 지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다 보는 프로그램이 유일하게 하나 있다. JTBC ‘썰전’이다.

‘썰전’의 한 장면. jtbc 제공

나는 왜 ‘썰전’이 재미있는가. 의사가 진찰하듯 스스로를 찬찬히 돌아보니까 이렇다.

요즘은 출근길에서부터 최순실 관련 뉴스를 보는 게 일이다. 처음 최순실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10월 26일 최순실 사태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JTBC의 ‘태블릿 PC’ 단독 보도가 터진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충격적인 뉴스들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 연설문이 민간인에게 유출됐고, 최순실이 입맛대로 고쳤다는 게 처음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뉴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키워드로만 돌아 봐도 ‘정유라 부정입학’ ‘장시호 재단’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이젠 ‘비아그라’ ‘올림머리’ ‘혼밥’ ‘프로포폴’ ‘쁘띠성형’ 같은 각종 자극적인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 이래서 임성한 작가가 작년에 미리 은퇴한 거였구나.

1차적인 뉴스의 홍수를 거쳐 2차적으로 SNS 타임라인에는 각종 패러디와 해석이 넘친다. 일단 이것도 다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도 사실은 머리가 복잡해서 누군가 잘 아는 전문가가 내 머릿속에 이 뉴스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하고 해석해야 할지 좀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바로 그 역할을 ‘썰전’이 하고 있다. 시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처럼 똑똑하고 말 잘 하고 아는 것 많은 사람들이 EBS 족집게 강사처럼 설명해 주는 걸 보면, 일주일간 충격적인 뉴스의 홍수에 시달렸던 머리가 좀 정리되고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구라의 오만상을 찌푸린 그 얼굴이 마치 내 마음 같기도 하고 말이다.

‘썰전’은 방송 초창기부터 챙겨 봤던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국회로 간 분과 화제의 변호사가 된 그분이 패널로 나오던 시절부터 애청했다. 다른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다른, 아주 색다른 재미를 줬기 때문이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에 일자무식이던 나에게 알기 쉽게 사건을 해석해 줬고 또 그 과정이 묘하게 지적인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해 줬다.

원칙적으로야 ‘100분 토론’이나 ‘시사 토론’ 같은 지상파의 프로그램이 정통 시사 프로그램이다. 단점은 보다가 졸게 된다는 점. 반대로 다른 종편 채널의 ‘강적들(TV조선)’ 같은 프로그램은 은근히 눈길을 잡아 끌어서 오래 보게 되는 재미는 있지만, 말 그대로 ‘지적인 카타르시스’ 라는 부분은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다.

|||

시사와 예능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도전을 했다는 것 자체가 ‘썰전’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오히려 프로그램 시작 때 ‘시청률 안전 쿠션’처럼 들어갔던 후반의 예능 썰전이 시청률 하락으로 먼저 막을 내렸다는 점, 그리고 정치와 예능을 과감하게 섞으면서 ‘예능’ 쪽을 강조했지만 두 달 만에 시원하게 막을 내려버린 ‘적과의 동침(JTBC)’의 사례와 비교할 때 시사를 좀 더 강조한 현재의 ‘썰전’이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임성한도 명함을 못 들이댈 것 같은 ‘막장의 시대’를 만나는 바람에 ‘썰전’이 시청률 10% 선을 바라보는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는 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즐겨 봤던 나조차도 왜 요즘은 ‘도깨비’ 보다 ‘썰전’이 재미있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TV 좀 봅시다 더보기]

(7) 해결사 이국주에게 바라는 진짜 '한 방'

(6) ‘천송이’ 소환? ‘길라임’ 만으로도 충분했는데…

(5) 인생은 '내로남불'… 김하늘 때문에 울컥한 날

(4) 정유라 사건 특급예언서? 볼수록 '소오름'

(3) ‘백주부 흥행공식’에 숟가락 얹는 사회

(2) ‘월화요정’ 박보검이 이준기를 누른 비결

(1) ‘미운우리새끼’를 보는 세가지 시선

‘TV 좀 봅시다’ 시즌1 다시보기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