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천사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특히 겨울밤 천사를 자주 생각했습니다. 날은 춥고, 빙판이 된 길은 미끄럽고, 그러다 눈발이라도 내리면 세상은 고립된 것 같았지요. 길이 끊어지면 고립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 사람인데, 그럴 때 천사의 발이 나타나는 것을 아닐까, 얼음보다 더 찬 발을 살그머니 디디며 지상에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 했습니다. 천사를 본 적이 없어 천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리창에 입김을 호 불면 살그머니 그려지는 형상, 두 손을 뻗으면 퍼드덕거리는 허공에 투명한 흔적, 절망도 남아있지 않은 무릎을 세우고 울 때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 천사가 있다! 천사 몇쯤은 있어야 세상이라 부를 수 있다고 여겼던 듯합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 나를 돌봐준다고 느껴. 동생이 말할 때 역시 천사가 있다, 또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천사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악의 평범성’의 세상에서도 우리 머리 위에는 악을 단죄하러 오는 연약함으로 위장한 순수한 천사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빛을 주오, 빛을 비추어 주오! 가장자리에 놓였으면서도 강하고 조용한 자. 우리들 비운 위의 천사여!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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