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국민들이 분노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던 국민들도 등을 돌렸고 11월초 실시된 국정지지도는 4%를 기록했다. 일본 TBS방송 취재진이 지난달 26일 대구 대중교통지구에서 열린 4차 대구시국대회 장면을 취재하고 있다. 배유미기자 yum@hankookilbo.com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로 인한 한국의 정치격변에 일본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충격에 이은 ‘대형 쓰나미’로 규정하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 차기 정권의 불투명한 외교행보에다 한국마저 식물정권으로 전락하면서 동아시아 힘의 공백이 일본의 안보지형과 외교기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지탱하는 보수우익은 한국 차기 권력의 행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야권의 집권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일간 연계가 약해지면 동북아 균형이 흔들리고 중국이나 북한만 이롭게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장은 위안부 합의 성과가 휴지조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바로 문재인, 반기문, 이재명이 누구인지 탐색하면서 반일색깔 여부로 재단하는 이유다. 한 방송은 반기문에 대해 우나기(뱀장어)라는 별명과 함께 ‘약간 친일성향’이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문재인은 ‘한국의 힐러리’이자 ‘다소 반일’로, 이재명은 ‘한국의 트럼프’로서 명백한 반일성향이라고 분류했다. 여기다 아베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관방부장관은 한일군사정보협정(GSOMIA) 체결을 거론하며 “그 필요성을 이해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국 차기 대통령의 조건까지 간섭하는 오만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을 제3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볼 기회를 새삼 갖게 된다. 일본이 보는 한국의 대통령제는 말년의 불행함이 매번 반복되는 패턴이다. 예외없는 수순을 정작 우리 스스로는 왜이리 둔감한지 아프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강한 대통령과 예고된 레임덕, 임기 4년차 쯤 개시되는 대통령측근에 대한 검찰의 칼날까지.

한국인처럼 정치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기도 힘들다는 게 일본인들의 평가다. 한국인 누구에게 물어도 ‘정치는 이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니 5,000만이 정치인이란 흔한 문구가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법률이나 절차가 절대적이지 않고 상위에 막연한 정의가 있다는 관념도 일본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다. 작년 안보법 반대시위를 주도한 일본대학생단체 실즈(SEALDs)의 멤버가 시위로 정치가 변할 수 있다는 현상을 체험하기 위해 광화문 촛불현장을 견학하고 온 경우도 있었다. 임계점에 이른 스트레스 사회, 무서운 교육열과 취업하기 힘든 현실, 병역부담. 복잡하고 놀랄 만큼 변화가 빠르다는 것까지 최순실 사태로 일본 역시 한국사회를 공부하는 중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일본인들이 이런 한국을 우월하게 보고 있다면 큰 오산이란 것이다. 아니 심하게 희화화됐다. 안 그래도 보통의 일본인은 북한 김정은 왕조를 한심하게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어처구니 없는 박 대통령의 부도덕한 일상은 한민족의 자존심을 땅바닥에 처박히게 했다.

한국 주류보수진영의 민낯을 처참하게 드러낸 것이야말로 아베 정권과 같은 시기 등장한 박정권의 운명이 왜 이토록 갈렸는지 답을 제시해준다. 적어도 아베는 국민이 재난에 빠져 위험할 때 현장에 있었다. 경제회복이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지만 뭔가 하려는 노력을 국민에게 어필했다.

우리 미래를 절망케 하는 것은 ‘국정농단 주체세력’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다. 친박계 대표 인물들이 비박을 향해 “탄핵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과 패륜” 운운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배신”을 입에 달고 살던 주군과 같은 DNA임을 과시하는, 믿기 힘든 장면이다. 이들은 최순실이 세상에 드러난 데 분해하지만 국정농단 자체에는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고 있다. 만약 대통령이 국격을 망쳐놓고 그나마 한국시민들이 촛불의 에너지로 놀라움을 줬다고 느낀 외국인이 있다면, 그들은 조만간 국민 손에 직접 끌려 내려오는 친박집단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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