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 ‘행상 책임’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 말이다. 행장(行狀)이란 사람이 죽은 뒤 그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로서 고전 문학의 에세이 장르에 속한다. 또, 이런 맥락과 취지에서 사람의 몸가짐과 품행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행장’으로 읽는다. 비유법으로는 환유법에 해당한다. 이 말은 이달 초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회동에서 거론된 적이 있다.

‘행장’은 1970년대 중반 국어책에 실린 유명한 “조침문”에 나오는 한자어다. 조선 후기 때 슬하에 자녀 없이 과부가 된 윤씨는 아끼던 바늘이 부러지자 바늘을 의인화해서 그 섭섭함을 표현했다. “조침문”의 작중 화자는 바늘의 행장과 화자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바늘과 영결한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국어에서 狀은 문서, 서류, 편지 등을 뜻할 때는 ‘장’으로, 또 모양, 형상 등을 뜻할 때는 ‘상’으로 읽는다. 영장, 소환장, 면허장, 독촉장 등에서는 ‘장’이며, 상황, 상태, 정상 참작 등에서는 ‘상’이다.

‘행장 책임’이란 용어는 일본이 독일 형법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메츠거(Mezger) 등의 이론에 붙인 이름이다. 즉 이 말은 근대 독일의 형법 사상 논쟁 과정에서 제출된 성격 책임론 내지 인격 책임론과 관련이 되어 있다. 특히 바로 그 성격과 인격을 구성한다고 상정되었던, 피의자의 몸가짐 및 품행, 즉 행장에 초점이 맞춰진 개념이다.

그러나 행위자의 성격 내지 인격에서 사회적 위험성의 근거를 구하고 그럼으로써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결코 아니다. 독일 형법 사상사를 보면, 우선, 소위 위험한 성격의 규정에 있어서 생래적인 것을 넣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배제하고 소위 ‘행장’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만을 넣을 것이냐는 논쟁이 있었다. 더 나아가서 전반적으로, 성격 책임론 내지 인격 책임론은 형벌 중에서도 목적형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그리고 형벌이 아닌 보안 처분 등을 너무 쉽게 정당화한다. 개별적인 범죄 행위에 대해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서 책임을 묻는다는 통상의 사회적 합의를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박근혜의 책임을 논할 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저도 모르는 새에 ‘디테일 속에 숨은 악마’에 홀려버리는 것이다. 박근혜의 책임은 좁은 의미의 법률적 책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분노는 무엇보다 박근혜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인 책임에 향해 있다. 디테일의 악마가 숨어 있는 바의 법률 책임이나 형사 책임은 그 아래 내지 그다음 단계의 문제인 것이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예측한 글에서 트럼프를 ‘파트타임으로는 어릿광대이고 풀타임으로는 소시오패스’라고 규정한 바 있다. 무어의 발상에 의지해서 말한다면, 흉악하고 잔혹한 살인범인 유영철, 강호순 등이 소시오패스인 것과 같은 정도로, 박근혜는 풀타임으로 폴리티코패스(politicopath)다.

박근혜는 주권재민의 정치 과정에 관한 한 사이코패스이며 민주적 정치 책임에 관한 한 소시오패스다. 그래서 국민 절대다수가 공공의 적이자 민주공화국의 적인 박근혜를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 자리에서 몰아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지금보다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며칠 전 박근혜가 ‘피눈물’ 운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피눈물 역시 소시오패스 내지는 폴리티코패스의 피눈물에 불과하다. 박근혜는 위안부 할머니의 피눈물, 세월호 유가족의 피눈물을 결코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 또,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한 ‘세 모녀’의 피눈물도,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니며 일하다가 감전사한 청년의 피눈물도.

영어 단어 책임(responsibility)의 어원적 의미는 ‘응답 가능성’이다. 문제는 박근혜로 끝나 버리는 게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의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의 즉각적인 축출 말고도 사회 전반의 개혁과 진보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요구가 명백히 표출되었다. 이에 대해서 제도권 정치인들이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횃불은 이제 여의도로 향할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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