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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오뎅집

입력
2016.12.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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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뎅집은 하도 좁아 네모난 오뎅 테이블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보면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를 모조리 훔쳐 들을 수 있다. 오뎅집 사장님은 잘 말린 복어지느러미를 넣은 컵에 뜨거운 정종을 따라주었다. 내 왼쪽, 테이블 모서리에 앉은 50대 아저씨는 자꾸 나와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난 이 집 20년째 단골이에요. 하하.”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냥 웃어 보이지만 아저씨는 “박근혜는 말이죠, 청와대가 자기 집인 줄 알잖아요. 오래 살았으니까. 그렇지 않겠어요? 하하하.” 시답잖은 말을 자꾸 붙인다. 오른쪽에 앉은 할머니가 내 히레사케 잔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거 마실 때 복어지느러미는 꺼내는 거예요?” 사장님이 냉큼 대답한다. “꺼내도 되고 안 꺼내도 돼요.” 행여 비리면 꺼내시라고, 내가 대답하려 했는데. 얼굴이 하얗고 아주 곱게 단장을 할머니가 수줍게 웃는다. 같이 앉은 할아버지와는 아마 연애 중인 모양이다. “이제 애들도 다 자라서 내가 더 해줄 게 없으니… 내 생각엔 이쯤에서 우리가 같이 사는 것도…” 할아버지의 말을 듣다 말고 김 오르는 국물 속 꼬치 하나를 집은 할머니가 다시 나에게 묻는다. “이건 뭐예요?” 이번에는 사장님이 대답하기 전에 내가 냉큼 알려드린다. “스지예요. 힘줄이요.” “이게 스지구나. 꼭 같이 살아야 되나요. 종종 만나서 이렇게 맛있는 스지도 먹고… 그럼 되지요.” 할아버지는 술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살짝 발갰다. 고백을 하느라 발개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함께 온 친구와 안중에도 없이 자꾸 여기저기에 귀를 댄다. 히레사케 몇 잔 값을 치르고 내가 주머니에 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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