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9일 국회에서 탄핵 표결이 이뤄진다. 통과될 것으로 보이지만, 만에 하나 통과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미 ‘박근혜 이후’로 이동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정부는 국민 다수에 의해 사망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박근혜 정부는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최악의 정부였다. 2013년 출범하자마자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을 뒤흔든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부터 시작해 세월호 참사(2014), 메르스 사태(2015), 그리고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정부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 최악의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냈다. 그 핵심에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놓여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첫째 개발독재 시대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고수했고, 둘째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셋째 문제 해결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존했던 것은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국정원을 위시한 권력 기관들에 대한 두려움의 동원이었다.

1978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9대 취임식에 퍼스트레이디 대행으로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떤 이들은 공무원연금 개혁, 미국ㆍ중국과의 균형 외교 등을 포함한 몇몇 정책들을 박근혜 정부의 업적으로 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업적과 실정의 대차대조표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적은 너무도 빈곤하고 초라했다. 대통령 후보 당시 약속했던 ‘경제 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는 집권하자마자 사실상 폐기됐다. 대북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 핵실험을 저지하지 못했고 남북 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폐쇄하게 했다. ‘국민행복시대’라는 비전은 결국 ‘금수저’만이 살기 좋은 ‘헬조선’ 담론으로 나타났다. ‘수저계급론’이란 말에 담긴 불평등의 현실이 박근혜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불평등의 해소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권력 농단 공모 혐의를 받음으로써 국민에게 절망과 분노를 안겨줬다.

박근혜 이후의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무릇 어떤 사태든 그 해법을 찾기 위해선 원인에 대한 성찰로 돌아가야 한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구조적 원인은 ‘박정희 체제’의 그늘과 ‘87년 체제’의 그늘에 있었다. 박정희 체제의 그늘이 억압적 국가기구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있었다면, 87년 체제의 그늘은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었다. 요컨대, 산업화 시대의 그늘과 민주화 시대의 그늘이 중첩되고 집약돼 있는 게 이 게이트의 제도적 특징이었다.

박근혜 이후의 한국사회를 올바로 여는 데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지난 한 달여 광장에서 들려온 촛불 민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광장의 합창은 크고 분명했다. 대통령 퇴진에 더해 정의를 바로 세우고 불평등을 제대로 해소함으로써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열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자 준엄한 명령이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과 이들을 조용히 응원하던 시민들의 소망은 정권교체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정의의 시대, 평등의 시대, 우리 모두 사람답게 사는 시대를 향한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둘째, 바로 이점에서 이제 막 열릴 제19대 대선 국면에서 보수든 진보든, 문재인이든 반기문이든 이재명이든 안철수든, 국민과 약속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 발전을 지체시키고 때론 후퇴시켜온 원인의 하나는 저성장과 불평등 해결에 무능한, 기득권 카르텔 체제에 암묵적으로 편승해온, ‘두 국민’ 사회의 갈등구조를 방관하거나 이용해온 정치 리더십에 있다. 이 낡은 리더십과 과감히 결별하지 않고선 박근혜 이후의 한국사회로 나아가는 문턱을 우리 사회는 넘어갈 수 없다.

촛불집회가 증거하듯 역사를 만드는 이들은 국민이다. 국민을 대표해 그 역사의 방향을 조타(操舵)하는 이들은 바로 당신들인 정치가들이다. 박정희 체제의 그늘과 87년 체제의 그늘을 동시에 극복할 제도개혁 의제들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겠다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정치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약속을 국민은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당신들이 증명해 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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