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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여성 문제에 관심을”… 아이돌 시장에 켜진 팬심 ‘촛불’

입력
2016.12.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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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그룹 엑소 멤버인 찬열의 생일을 맞아 그의 팬클럽 ‘아린네이웃’ 회원 A씨는 시민단체인 여성민우회에 전화를 걸었다. 단체 후원 계좌에 후원금을 입금하고 난 뒤다. 6일 여성민우회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많이 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원한다”고 후원 이유를 밝혔다.

엑소 등 아이돌 팬들 여성 단체에 잇단 기부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며 여러 사회 활동에 나서고 있다. 스타를 대신해 팬들이 여성 단체 후원을 통해 연대감을 드러내거나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K팝 시장에 드리운 여성 혐오의 그림자를 거두기 위해 문화적 혁명의 ‘촛불’을 들고 있는 셈이다.

요즘 가요계는 ‘여성 혐오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랩 몬스터가 솔로 곡 ‘농담’에서 “넌 최고의 여자 갑질”이라고 한 데 이어, DJ DOC가 최근 낸 시국 선언곡 ‘수취인분명’에서 “미스 박”이라고 랩을 해 여성 혐오 논란을 불렀다. 팬들이 여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아이돌 팬들의 여성 단체 후원이 대표적인 활동으로 최근 6개월 새 줄을 잇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엑소 멤버인 레이의 팬들은 지난 10월 레이의 이름으로 1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을 상담소에 보냈다. 레이의 팬클럽은 이메일로 “레이가 팀에서 치유의 캐릭터”라며 “그 능력이 성폭력 피해자 분들의 상처 치유에 쓰였으면 좋겠다”고 후원 이유를 전했다. 엑소는 멤버 별로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닌 것으로 캐릭터를 설정하고 있다. 팬들이 스타의 치유 능력을 빗대 여성의 상처를 어루만진 셈이다. 그룹 카라 출신 한승연의 팬들도 성차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복지에 써 달라는 바람을 담아 8월 상담소에 쌀 100kg을 기부했다. 한승연은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대학생 정예은 역을 연기했다.

아이돌 팬들의 사회 기부 활동은 소아암 환우 돕기 같은 보편적인 후원에서 여성의 성차별 해소라는 이전과는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아이돌 팬들 자체가 여성 혐오적 시선에 노출돼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최원진 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아이돌 팬들도 ‘빠순이’라 낙인 찍힌 성차별의 피해자라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에 적극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돌의 언행과 노래 속 성차별 요소를 모니터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의 글들.
아이돌의 언행과 노래 속 성차별 요소를 모니터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의 글들.

페미니즘 물결 타고 성차별 언행도 감시

일부 아이돌 팬들은 가요계에 뿌린 내린 성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매’를 들기도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성 혐오 공론화 계정을 만들어 스타의 발언이나 가사 속 여성 비하 표현을 문제 삼고, 자정을 촉구하고 있다. 11월에만 그룹 세븐틴과 빅스를 대상으로 한 SNS 계정이 두 개나 신설될 정도로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성 혐오 언행을 꾸준히 비판해 더 나은 문화를 만들”(방탄소년단 여성혐오공론화계정)거나 “여성 인권을 생각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아이돌”(세븐틴 여성혐오공론화계정)이 됐으면 하는 취지에서다.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했던 과거의 팬덤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이다. 올 상반기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촉발된 여성 혐오 논란과 사회 전반에 걸친 페미니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아이돌 팬덤에 영향을 끼치면서 생겨난 변화다.

팬들이 적극적으로 성차별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 일부 기획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노랫말을 검토할 때 ‘여성’ 관련 내용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힙합 음악을 하는 아이돌이 여럿 속한 B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여성 비하 문제가 잇따라 래퍼들이 상대를 공격하는 ‘디스곡’을 낼 땐 가사 속 여성 비하 표현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힙합 아이돌이 소속된 C기획사의 관계자도 “완성된 곡이 아니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게 사내 규정이라 따로 외부 모니터를 받진 않는다”면서도 “소속 가수의 신곡 회의 때 가사에 여성 관련 오해의 소지가 없나 면밀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힙합을 주력 장르로 내세운 아이돌 기획사들은 소속 래퍼들의 ‘여성 혐오’ 가사들이 논란이 돼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이지만, 아직도 노래 속 여성 비하 문제에 대해 둔감한 아이돌 기획사도 많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아이돌 음악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한국의 이미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기획사들이 아이돌 음악을 만들 때 인종 및 성차별 이슈에 더 책임감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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