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수 혹은 진보의 시각을 얼마나 담고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논자들 대부분이 국정교과서를 통해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니만큼, 이성적 토론 능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은 높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교과서를 토론의 매개체로 보기보다는 특정 내용의 주입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놀랍게도 서두에서 특정 역사관의 주입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력 함양”을 목표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신정권 시기 노비 만적의 난을 사례로 들어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자. 우리도 20세기에 군부독재라는 이름의 무신정권을 겪었고, 그 나름 사회 전반의 동요가 있었으므로, 과연 교과서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는” 사고력을 키우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만적은 외쳤다. “무신 난이 일어난 이래로 고위 관리들 중에 천인 출신이 많아졌다. 장수와 재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어찌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교 역사 교과서 91페이지가 제공하는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무신정변 이후 신분 질서가 흔들리자 농민들과 천민들도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신분해방을 주장하며 봉기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이것은 보수적 역사 해석도 아니고, 진보적 역사 해석도 아니고, 다만 모순적인 역사해석이다. 신분상승과 신분해방은 별개다. 신분상승의 열망은 현존하는 신분체제 내에서 자신이 신분의 사다리를 빨리 타고 오르겠다는 것이고, 신분해방의 열망은 그 사다리 자체를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협잡을 통해서라도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열망과 대학제도 자체를 개혁하겠다는 열망이 같지 않듯이, 신분상승의 열망과 신분해방의 열망은 다르다. 청소년기부터 이러한 차이와 모순을 논하는 기회를 얻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정상적인 토의민주주의를 구현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서술로 점철된 교과서로 주입식 교육을 받다 보면, 대체로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생겨난다.

첫째, 모순을 판별할 능력이 없으므로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식당에 가서 “음식이 너무 맛이 없으니 한 그릇 더 먹을게요” 라고 말하거나, 음주단속에 걸리자 “취했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어요”라고 말하거나, 공식 석상에 올라 “애국하는 마음으로 부정을 일삼았어요” 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성적 질의응답 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어떤 모순도 참아내는 정신의 굳은살이 발달한다. 불의나 모순을 보면 일단 참는다. 그리고 그 굳은살로 현실의 뾰족한 모순을 성큼성큼 밟고 나아가 서슴없이 부정을 저지른다. 영혼의 속살이 퇴화한 이들에게 도덕적 지탄을 하거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셋째, 체질상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이들은, 각종 불의와 헛소리에 대한 알레르기를 지병으로 갖게 된다. 이들은 상시적 분노상태에 있다. 젠장, 태어나버렸군, 혹은 희망은 바보의 특권이지… 라고 중얼거린다. 이들의 분노는 고독한 독백으로만 표현될 뿐, 함성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옷깃을 여미고, 오늘도 춥고 비열한 거리를 걷는다.

이들의 고독에는 원인이 있다. 집권세력은 분노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려 들지는 않지만, 그 분노를 제압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집단행동을 하는 데 드는 시간적, 금전적, 체력적, 정서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기 어렵게 사람들을 궁핍한 상태로 유지시킨다.

그러나 2016년 사람들은 이제 비열한 거리를 지나,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날로 가난해져 가는 이들이 갑자기 집단행동의 비용을 흔쾌히 지출할 만큼 여유를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어떤 비용이라도 기꺼이 지불할 만큼 분노가 커졌을 뿐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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