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스트라바보들 구별법(How to spot a Stravasshole!)’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포복절도한 적이 있다. 스트라바보(Stravasshole)는 ‘Strava’와 ‘asshole’의 합성어다.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스트라바부터 설명을 하는 게 순서겠다. 스트라바(Strava)는 스포츠 애플리케이션이다. GPS를 연동해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해서 이동시간과 거리를 측정해준다. 자전거 라이더들 사이에서 유독 스트라바의 인기가 꽤 높다. 몇몇 장점 중에서도 독보적인 건 사용자들의 순위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주는 기능이다. 프로 선수들도 사용하므로 어느 지역에서 대회가 열리면 해당 구간 최고기록들이 하루아침에 전부 비현실적인 숫자로 바뀌기도 한다.

이쯤이면 스트라바 모르던 분들도 짐작하셨으리라. 그렇다. 스트라바로 ‘지옥문’이 열렸다. 많은 라이더들이 스트라바 순위에 목을 매기 시작했고 자전거를 타기 위해 스트라바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스트라바 순위를 올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는 현상이 ‘글로벌한 스케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스트라바보’라는 단어의 탄생배경이다. 3분 남짓의 짧은 영상에는 ‘스트라바 이전’과 ‘스트라바 이후’ 자전거 라이더들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다소 과장되게 그려진다. 스트라바 이전에는 자전거가 고장 난 사람을 만나거나 길 잃은 사람을 만나면 선뜻 도와주던 라이더들이, 스트라바 이후부턴 빨리 달리느라 타인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거나 심지어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돌변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스트라바보라는 말은 도로의 에티켓도 자전거 본연의 즐거움도 망각한 채 스트라바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다. 또한 좀 거창하게 말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가민 속도계, 아이폰 그리고 아이폰 속 스트라바.

이게 남의 나라 일일까. 그럴 리가. 스트라바보는 한국에도 적지 않게 서식한다. 한국인이 누구인가? ‘서열의 민족’이다. 세상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거나 ‘끝판왕’을 지명해야 직성이 풀린다. 인터넷 댓글에서까지 등수놀이를 한다. 역사와 제도는 승자독식ㆍ약육강식ㆍ서열주의 문화를 한국인 뼛속 깊이 새겨 넣었다. 최근 몇 년간 유례없는 로드바이크 열풍이 불어 너도나도 자전거를 사고 쫄바지를 입게 됐으며, 스마트폰 보급률은 91%로 세계 1위다. 그야말로 스트라바보들이 나타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이를 증명하듯 자전거 커뮤니티에는 자신의 스트라바 기록을 과시하는 ‘인증’ 글이 넘쳐난다. 기록의 진위를 놓고도 드잡이가 심심찮게 벌어졌다. 유명한 업힐 코스의 퍼스널 레코드 1위(멋진 왕관 아이콘이 붙는다!)가 어느 날 바뀌면 기록 조작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급기야 자전거가 아니라 스쿠터를 타고 만든 기록이라는 “합리적 추측”까지 나오면 수습불가다. 커뮤니티는 이미 아수라장이다. 스트라바 순위 경쟁이 과열되어 사고가 빈발하자 아예 순위 측정 자체가 금지되는 코스도 생겨났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실은 누굴 비판하거나 냉소할 입장이 아니다. 숫자의 노예가 되기 싫어서 나는 가민 속도계도 파워 미터도 달지 않았다. 그런데 스트라바는 켜고 자전거를 탄다. 그것 외엔 일정 기간 동안의 라이딩 이력이나 몸 상태를 확인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도 자신과의 싸움이란 명분하에 순위를 끊임없이 확인하게 됐다. ‘야, 그래도 이 나이 대에선 내가 상위 몇 프로 안에 들었군!’ 하며 뿌듯해하고, 나보다 느린 사람들을 조금쯤 무시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결국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스트라바보였던 셈이다. 물론 내가 타는 로드바이크는 기본적으로 레이스를 위해 특화된 자전거이기 때문에, 속도나 기록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다. 아마추어 라이더에게도 경쟁이라는 요소는 동기부여에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전거를, 심지어 그것이 로드바이크라 할지라도, 우열을 가르는 도구로 환원하고 싶진 않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이 우열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지 않은가.

1등에겐 왕관이 주어진다.

스트라바는 자전거 타는 일상을 경쟁 모드로 만든다. 허나 그게 스트라바 만의 탓은 아니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다리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속도, 고개를 넘은 직후의 성취감, 신선한 바람, 낯선 길이 주는 두근거림과 온갖 새로운 냄새들, 복귀하는 길의 차가운 커피, 동료의 땀과 웃음. 그런 것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 본연의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은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잔혹한 세계를 견디게 하고, 나아가 그에 맞서 싸울 힘을 준다. 자전거가 인간에게 옳고 아름답고 즐거우려면, 그것이 우열을 가르고 경쟁으로 내모는 억압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사회가 상호작용하는 해방의 순환(cycle)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스트라바를 버릴 필요는 없다. 필요한 건 그저 조그만 성찰이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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