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상? 어차피 간판만 바꾸는 거 아니야. 그래 봤자 똑같아,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얼핏 영리한 태도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도자들의 달콤한 허언에 속아 바보가 된 경험이 있던 이들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냉소주의라는 함정에 빠지게 만들어 공동체 전체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 더 좋은 자기와 세상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에 대한 믿음도 없으니 애정도 없고, 죄의식이나 염치도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악의 소굴로 들어가거나, 분노와 허무감에 싸이기에 십상이다. 냉소적이고 양심 없는 사람들은 주변을 화나게 하므로 고립될 수도 있다. 지난 십 년 가까이 반사회성 인격장애자,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양극화, 보상 없는 작업 환경, 등등의 이유로 취업이나 창업을 포기하고, 높은 집값과 비용 때문에 결혼도 육아도 포기하는 체념의 정서가 팽배한 이유다.

하지만 대통령의 부정과 국정농단에 분노해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우울한 모습보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넘쳤다. 자유발언대에 선 이들은 아테네의 광장에 나온 듯 거침없이 의견을 펼쳤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위축되고 분을 삼켜야 했던 문화계 사람들도 적극 힘을 보탰다. 촛불집회는 1960년대 우드스톡 페스티벌처럼 신나는 축제의 장이었다. 경제계, 언론, 문화예술, 공무원 사회까지 철저하게 조종하고 억압하려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항의 함성이 가능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집회에 나온 이들은 과거의 눈먼 집단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아니었다. 촛불 든 사람들은 이념, 나이, 직업, 성별과 상관없이 서로에 대해 예의를 지켰다. 죄 없이 끌려 나와 무거운 방호 장구를 걸치고 한없이 서 있어야 하는 나이 어린 경찰들을 따뜻하게 배려하기도 했고, 경찰들 역시 시민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깊은 인내를 보였다. 부패한 권력자와는 전혀 다른 보통사람들의 평화로운 시위는 인간의 품격과 존엄에 대한 예의가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과 그 주변은 가능한 모든 법적인 과정을 피하고 늦추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라 경제나, 건전한 보수의 미래보다는 본인들의 구속 여부가 더 급박한 문제이기 때문일까. 쇠심줄 대통령 때문에 촛불집회의 방법을 이제는 다시 창조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 같다. 장기전이다. 올해 9월 탄핵당했던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도 거의 열 달을 미적대다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동안, 대통령 권한 대행, 야당 정치인들 역시 쉽지 않은 정치적 격랑을 겪었고, 브라질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000달러에서 7,000달러로 내려앉았다.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 국민이 지치고, 정치혐오와 무력감에 다시 빠지면, 시계는 다시 거꾸로 간다. 숨죽이고 있던 댓글 조작단이나 일당 받는 시위대와 함께 말이다. 촛불시위의 동력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다시 무기력함과 망각의 늪에 빠져들 때까지 버티면 된다고 계산할 것이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때가 되면 다시 재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촛불시위 때문에 경제가 망가진다고 강변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는 촛불 시위 때문이 아니라 지난 3년여 동안, 주사 맞고, 약 먹고, 주변 이권 챙기며, 인사를 망쳐 놓았기 때문에 무기력해진 것뿐이다. 오히려 시위를 통해 그동안의 우울과 좌절감이 치유되면 얼마든지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똑똑하고 강인한 한국인들은 이보다 훨씬 더한 곤경도 너끈히 극복해 왔다.

하지만 박근혜란 문제적 인간을 대통령으로 만든 책임에서 과연 나는 무죄인지 짚어야 할 것 같다. 부모를 비극적으로 잃고 독신의 길을 걷는 말수 적은 여인이라, 그들의 간계나 모략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였고, 신화화된 박정희 대통령의 허상에 숨은 무능함도 짚어내지 못했다. 논리보다 감성적으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도 못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엉터리 논객들의 견강부회도 방치했다. 촛불이 밝히는 새 세상을 위해 아프지만 짚고 나가야 할 일이 태산이다. 어쩌면 이제는 촛불 집회의 궁극적인 목적이 대통령 하나의 퇴진이나 구속이 아니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투명한 인사와 정의로운 나라 살림 만들기까지 확장되어야 할 때가 온 듯싶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 역사 발전이 있겠는가.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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