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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딸과 연애하기

입력
2016.11.2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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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딸아이가 와서는 폭 품에 안긴다. “엄마,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 “응.” “엄마도 나 사랑하지? 그럼, ‘나도 A를 사랑해’ 이렇게 말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달달한 연애 초반에 주고받을 법한 말을 어디서 배워서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일까. 초등학교 들어간 첫째도 돌이켜보면 이 나이 때 엄마에게 달콤한 말들을 늘어놓던 기억이 난다. 애교가 넘치는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는 연애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딸은 사랑스러운 애인이다. 엄마에게 매달려 다정한 말들을 쏟아내고 온몸으로 엄마를 끌어안으며 체온을 느끼고 싶어 한다. 애교도 앙탈도 부려보고, 온갖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다. 엄마가 있으면 그 옆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딸은 자기중심적인 애인이다. 늘 자기만 바라봐야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심통을 부린다. 놀이할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해야 하고, 엄마가 해야 할 행동이나 대사까지 다 정해주려고 한다. “엄마는 이렇게 말해. 알았지?” 가끔은 엄마가 입는 옷이나 화장, 헤어스타일까지 훈수를 두려고 한다. 엄마가 자기 마음대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산이다.

딸은 챙겨줘야 할 것이 많은 애인이다. 독립성이 전혀 없고,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다. 유치원에서는 혼자 잘하다가도 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무조건 엄마가 다 챙겨줘야 한다고 매달린다. 밤에 자려고 누워서 불을 꺼도 적어도 세 번은 엄마를 일으켜 세운다. 목이 마르다, 몸이 간지럽다, 화장실 가고 싶다며 엄마에게 시중을 들게 한다. 진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들어주기 힘든 성가심이 있다.

딸은 독점욕이 강한 애인이다. 엄마가 같이 놀 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참지 못하고, 엄마가 오빠와 같이 있는 모습도 가만두지 않는다. 엄마와 오빠가 같이 있으면 꼭 가운데에 끼어들며 “나랑 놀아” 하며 방해를 하고 질투한다.

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함부로 하는 애인이다. 엄마를 제외한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얌전하고 유치원에서 모범생인 아이지만, 엄마가 집에 오는 순간부터 무장해제가 된다. 억지도 생떼도 엄청나게 부리고 성격도 만만치 않다. 가끔 친정에 맡기면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는 순하고 착한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엄마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만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달달한 연애도 좋은 시기도 있고 힘든 시기도 오듯이, 육아도 그러하다. 좋기만 한 것이 어디 있으랴.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소홀해지는 시기가 있고 또 그러다 보면 서먹해지기도 하다.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할 때 아이는 더 심통을 부린다. 사랑하면서도 밉고 더 같이 있지 못해서 아쉬운 아이의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아 때로는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첫째도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가 동생이 태어났을 때 심통을 엄청나게 부렸는데, 그때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동생이라는 다른 사랑의 대상이 생겼을 때 심정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떠나갈 때의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안타깝고 상대의 마음을 잡고 싶은데 그럴수록 더 매달리고 억지를 부리고 밉상이 되는 것이다.

아이와의 연애도 굴곡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훨씬 크고 깊은 사랑을 아이에게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 누가 나를 이렇게 애타게 그리워하고 절절하게 사랑하는가 싶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라며 점점 엄마에 대한 사랑이 식어 간다. 어릴 때는 아침마다 엄마를 끌어안고 지긋이 뽀뽀를 해주던 큰 아이는 벌써 엄마보다는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한다. 둘째도 좀 더 자라면 언제 이렇게 엄마를 절절하게 찾았는지 잊어버리고 귀찮아하겠지. 그런 시간이 오기까지는 아이에게 받는 이 사랑을 최대한 느끼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고 자기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시간이 오더라도, 지금의 행복한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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