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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앵무새의 혀

입력
2016.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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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 이름도 빛깔도 발음도 예쁩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인형 같습니다. 인형 같다는 직유를 완성하는 것은 길고 단단한 부리입니다. 의지가 없다면 끝내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앵무의 혀는 다른 새와는 달리 두껍고 인간의 혀와 비슷하여 인간의 말을 잘 따라 한다 하지요. 그중에서도 회색 앵무가 인간의 말을 가장 잘 따라 한다 하지요. 잠시 온통 회색인 앵무의 빨간 꽁지와 부리 속 조봇한 혓바닥을 가늠해봅니다.

안녕? 안녕? 누가 길들이며 따라하는 목소리입니다. 흉내, 즉 시늉은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즉 감당을 뺀 상태의 것입니다. 아무 죄 없는 앵무새가 수난을 당하는 모양새지만, 앵무새 같다가 인간에 대한 비유로 넘어오면, 앵무새의 혓바닥을 가진 인간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목소리를 내뱉을 수 있습니다. 시늉 속에는 괴로움이 없지요. 감당해야 할 것은 다만 시늉이라는 목소리뿐이니까요. 감당은 육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의 위험을 담보할 때 감당이 발생하지요. 감당의 작정만큼 목소리는 육체성을 가지고 말이 되지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생각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이 기이한 울림, 말이지요. 이 알 수 없는 힘, 말이지요. 말 한마디가 설화(舌禍)도 되고, 새로운 방향의 기폭제도 됩니다. 목소리가 말이 될 때.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판탱 묘지에서 낭독되었다는 자크 데리다의 조사(弔詞).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듯 그를 이름으로 부르면서” “아듀, 엠마뉘엘.” “아-듀a-Dieu [신Dieu-에게로a]”. 자신의 안으로 맞아들인 죽음의 몸으로 함께 죽음 너머를 열어젖힙니다. 안녕, 마지막 인사는 최초의 인사가 되고 나란히 “신 앞에 섬”의 자리를 만듭니다.

“그 목소리 아닌 말을 단 한번 하고 싶은/ 분홍빛 조봇한 작은 혀를 보았느냐?” 앵무새에게가 아니라 철저한 앵무새 흉내 내기에 돌입한 인간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앵무새의 목소리를 내면 안전이 보장된다고 길들인 목소리가 있다는 것인데, 당신들의 조봇한 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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