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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박근혜 대통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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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박근혜 대통령께

입력
2016.11.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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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서 최재경 민정수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서 최재경 민정수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쓰시는 걸 보니 평소 TV 드라마를 즐겨 보시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과학자가 아니라 드라마 애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예전에 즐겨봤던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2009년 최고의 드라마, ‘미실(未實)’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선덕여왕’을 기억하십니까. 미실은 신국(新國)의 황녀로서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려 황제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훗날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은 이런 미실에 맞서 황권을 되찾으려 합니다.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누리던 미실은 김춘추가 등장하자 스스로가 신국의 황제가 되려고 정변을 일으킵니다. 급기야 덕만의 군대와 미실의 군대가 충돌해 내전의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군사 한 명이 아쉬운 절체절명의 순간. 그러나 미실은 자신을 추종하는 최전방의 군대를 끝내 부르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전까지 그저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탐했던 미실은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작심한 이후 비로소 신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모성애와도 같은, 어버이로서의 주인의식을 갖게 된 것이죠. 매사에 완벽을 추구했던 미실은 아마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성군으로서의 황제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성애의 관점에서 자각한 자신의 모습은 한낱 반란수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전방의 군대까지 빼내는 것은 신국에 대한 모성을 가진 황제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미실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진심으로 조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긴 것입니다.

만약 미실이 끝내 최전방의 군대를 빼냈다면 어땠을까요. 결국엔 미실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겠지만,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족이 흘린 피의 강물을 건너야만 했을 겁니다. 군대가 전방을 비운 사이 행여 백제나 고구려가 쳐들어온다면 신국 전체가 큰 곤경에 빠졌을지도 모르죠. 국가를 자식처럼 아끼는 지도자라면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었습니다. 그랬다면 미실은 아마도 신국 역사상 최악의 황제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허구적인 드라마 속 이야기입니다만, 미실의 마지막 선택은 2016년 11월의 대한민국에서도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줍니다. 대통령께서는 자타공인 ‘대한민국과 결혼’하신 분입니다. 저는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대통령님의 진심이 모두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과 국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 마음으로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을 돌아보십시오. 대통령께서는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얼마 전 검찰이든 특검이든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잘못했다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새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검찰수사는 차일피일 미루고 인사권을 행사하고 외교 행보도 개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국민은 이미 대통령님을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대통령 직무수행을 중지하라는 것이 100만 촛불의 정언명령입니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다시 국정에 복귀하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 국민에게 “갈 데까지 가 보자”고 선전포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미실이 전방의 군대를 빼돌려 동포들에게 칼을 들이미는 행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5,000만 국민의 비난과 조롱과 분노 속에 15개월 더 대통령직에 머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동안 대한민국이 안전하고 무사하게 세파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훗날 역사는 대통령님을 어떻게 기록할까요.

인제 그만 대통령직에서 내려오십시오. 조국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봉사할 기회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품위를 지킬 기회입니다. 그래도 기어이 그 자리를 고집하시겠다면, 저는 기꺼이 광화문을 지키는 한 자루의 촛불이 되겠습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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