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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닥치고 퇴진” 그러나 질서 있게

입력
2016.11.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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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라 한목소리 국민적 공감대

자신과 국민 위해 최선의 길 택해야

분권과 연대 가능한 개헌 출구 삼길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1월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1월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1ㆍ12 혁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3차 촛불집회 민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닥퇴’즉 닥치고 퇴진이다. 광장에 구름처럼 몰려든 100만 인파만이 아니라 나머지 국민들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선 후퇴는 이미 한가한 얘기가 됐다. 하야, 퇴진, 국정에서 손 떼라, 탄핵 등 표현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더는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는 똑 같다. 평화적이었지만 냉정하게 분출된 분노에 기반한 거역할 수 없는 공감대다.

지금 박근혜의 선택이 궁금하다. 이른 시일 내 자진 사임 즉 하야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한번 당해 봐라”는 억하심정이면 못할 것도 없다. 이 경우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서고 60일 내 현행 5년 단임 헌법에 따른 후임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뜻에 충실히 따라온 황 총리다. 그런 그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는 것은 분노하는 국민에게 일종의 복수가 될 수 있다. 대선 치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여야 정치권도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조기 하야한다면 형사소추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면 바로 구속이다. 이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이른 시일 내에 청와대를 걸어나올 생각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헌법은 일시적이나마 형사소추를 면할 좋은 방패막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헌법과 법률 위반 혐의가 뚜렷해질 경우 얘기는 또 다르다. 대선을 염두에 둔 여야의 정치적 이해타산과 의석분포 등 변수가 있겠지만 시중의 분위기상 탄핵절차를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16일 검찰의 박 대통령 직접 조사가 1차 고비지만 여야가 합의한 특검과 국정조사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의 선택지는 이런 점에서 넓지 않다. 자진 조기 하야와 탄핵에 의한 강제 사임 사이에서 자신에게 그나마 유리하고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이다. 박 대통령의 평소 성정에 비춰 끊임없이 반전의 기회를 노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결코 그의 편이 아니다. 그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너무 늦지 않게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게 옳다.

질서 있는 퇴진이 박근혜의 몫이라면 질서 있는 수습은 여야 정치권의 몫이다. 박 대통령이 고집스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이 구사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정치권이 보여 온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과거 3김 시대 DJ나 YS, JP와 같은 무게 있는 정치인의 부재가 새삼 아쉽다. 지금은 고만고만한 차기 대선주자들이 자기정치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당 지도부의 장악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다. 광장에 넘치는 국민의 분노와 변화 열기를 앞장서 수렴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이끌려만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광장에 분출했던 국민 에너지는 직선제와 5년 단임 실현으로 출구를 찾았다. 지금 전국에 메아리 치고 있는 국민의 분노와 변화 열망이 박 대통령의 퇴진으로만 끝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정치권이 아무런 구상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다. 힘 빠진 박 대통령을 주도적으로 통제할 생각은 안하고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물러나라고 압박하는 데만 힘을 쏟는다.

박 대통령이 초래한 지금 사태는 국정을‘무당’에 의존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것 외에 현행 대통령제의 폐해에서도 기인하는 바가 크다. 과도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서 또다시 5년 단임 승자독식의 대통령을 뽑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개헌 방향과 일정에 대한 공감대 없이 ‘11ㆍ12혁명’은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조만간 결론을 맺어야 할 국회 추천 총리나 거국내각구성도 승자독식이 전제된다면 원만한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야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이나 각 정파가 권력을 나누고 연대가 가능한 개헌을 전제로 출구를 찾아야 한다. 결국 기-승-전-개헌이 정답이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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