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를 보면 역사는 일직선으로 발전하기보다, 역회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가 민주화 30년이 결국 반민주적인 제3공화국으로 회귀할 것을 예측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인가. 허탈감과 상실감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제라도 터진 것은 한국의 앞날을 위해 다행이다. 다만 과거를 보건대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이 다행이 또 하나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민주화 30년 동안 한국은 대통령의 투옥, 자살과 그 가족들의 구속사태를 보아 왔다. 그런데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가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국제사회에서 크게 낙오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참에 한국사회는 마치 전쟁을 치른 후처럼 곳곳의 문제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대부분 대통령 개인 탓으로 돌리는 데 대해 크게 이의는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도 없다. 이번 사태의 원인 중에는 대통령 꿈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면서도, 자신들 권력욕에 어두워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도 숨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선거를 이용해 자리를 차지한 후에는 민심을 반영하는 데 소홀해 정치권과 국민의 간격이 너무 벌어졌다. 이와 함께 제대로 된 정강과 정책 아이디어도 없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맹목적인 지역주의를 이용해 정치해온 그룹과 정당의 문제가 도사려 있다. 이런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비판 견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판하는 사람들을 억눌러 왔다. 한국사회는 고질적 지역주의에 기생해 온 정치의 최후 종말을 보고 있다.

최순실 일당들의 공작정치는 제3공화국의 재판이다. ‘선의로 재벌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는 대통령의 변명에서 21세기까지 남아있는 ‘제3공화국의 정경유착’을 본다. 국가가 경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능률 위주의 발상에서, 자의적인 인사개입을 통해 관료사회의 의욕을 좌절시키고 관료제도를 파괴하는 것에서도 제3공화국을 보게 된다. 중점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예산을 남용하고 낭비해 온 것은 비단 이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칙이 무너진 인사로 정치권의 영향을 받게 해놓은 후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고 검찰을 비난하는 것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제3공화국의 망령이 민주주의의 커튼 뒤에서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대통령 때리기’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와 유사한 병폐가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눈앞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많은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덮어 왔다. 인터넷, 핸드폰 등의 포스트 모던한 껍데기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비민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제도와 관행을 다시 한번 씻어내야 한다. 이제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남아있는 비민주적 구태를 심각히 반성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2의 도약을 위해 사회 곳곳의 문제를 모두 쏟아내야 한다.

한국이 당면한 도전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제로섬 게임을 일삼는 정치구조의 개혁, 형식적 법치 속에 실종된 법치주의 회복, 재벌 문제를 포함 능률과 형평성의 균형을 바탕으로 한국에 맞는 정치경제제도 수립, 경제성장의 과실이나 대외 경제위기의 충격을 모든 계층이 공정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분배 체계, 연속성을 보장하는 관료제 확립, 국내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외교안보정책 체계의 수립 등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야 및 사회세력을 포함한 한시적 구국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제2 도약을 위한 점검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갈수록 불어나는 최순실 사건이 흥분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한국의 건설을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냉정함이 절실한 시기다. 내년 대선은 이런 도전을 헤쳐갈 수 있는 비전과 자질 그리고 능력의 심판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제는 영원히 제3공화국의 망령을 떨쳐 버려야 한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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