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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어머니의 육아분투기

입력
2016.11.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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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난 이후 생업에 뛰어드셨다.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급여가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작은 공장 야간반에서 일하셨다. 오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누군가의 소개로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해 1년 만에 자격을 얻었다. 어머니가 자격증을 받은 날, 여동생과 함께 기뻐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15년이 지나 나와 여동생은 공부를 마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좋은 위치에 중개사무소를 차릴 만큼의 여유는 없었던 어머니는 변두리 지역에서 개업했다. 큰돈이 될 리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사실상 처음으로 가져본 ‘자격’이자 ‘신분’ 무엇보다 ‘직업’이기에 돈으로만 따질 수는 없었다.

늦은 나이에 공인중개사가 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던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내 아이 양육 때문이었다. 아이가 세 살 때 아이 엄마가 외국으로 잠깐 공부를 하러 가야 했는데, 그때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셨다. 아이 엄마가 돌아오자 어머니는 곧 다시 내 여동생의 아이를 돌보게 되셨다. 마침 여동생이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육아도우미가 된 것도 벌써 4년이 지났다.

최근 어머니는 더 바빠지셨다. 여동생은 아침 7시 30분이 되면 출근해야 한다. 어머니의 사위이자 내 여동생의 남편은 지방 근무로 평일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딸이 출근하기 전까지 20분 거리의 여동생의 집에 도착해 아직 자는 여동생의 두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9시까지 큰 아이를 유치원으로,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각각 태워준다.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에는 동생 집으로부터 20분 거리에 있는 내가 사는 집에 오셔서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우리 집 둘째 아이를 돌본다. 나로서는 엄두가 안 날 일이지만 어머니께는 일상이다. 아이만 돌보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자는 틈을 나서 아들 집, 딸 집을 청소해두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꺼내 반찬을 만들기도 하신다.

말하자면 지금 어머니는 사실상 세 집의 살림을 살고 계신다. 우리 부부와 여동생 부부 모두 나름대로 살림이든 육아든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애를 쓰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메울 수 없는 육아의 빈틈이 있다. 8시 출근인 엄마가 9시 등원인 아이를 어떻게 유치원에 데려다준다는 말인가. 출근 시간은 어찌 이토록 ‘지엄한 것인지’ 직장인 엄마가 아이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란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육아휴직이 눈치 보이는 직장맘은 백일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내키지도 않지만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려 봐도 백일 아이를 받아 주는 곳은 없다. 육아의 빈틈을 막아주는 어머니 덕분에 우리 오누이 사정이 이만큼이라도 된 것임이 분명하다.

어머니는 내 파트너와 여동생에게 “여자도 살길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절대로 직장 그만두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여자인 당신이 일을 못 하더라도 여자인 딸과 며느리의 자격, 신분, 직업을 지켜주고자 어머니는 오늘도 세 집을 거쳐, 세 집의 살림을 살고, 네 명의 아이를 돌본다. 만약 여동생이 다니는 직장에 출근 시간만 자율적으로 조정하게 해주는 제도가 있었더라면, 육아휴직은 당연한 직장이었다면 내 어머니도 직업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내 여동생의 나은 사정이 어머니의 희생, 더 솔직해지자면 알량한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합리화한 어머니에 대한 착취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머니가 육아에 분투하고 있는 것에 비하자면 내가 하는 육아는 취미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나 말이 많은데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시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으셨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 많은 아들, 며느리와 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지 않고, 인터넷에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말씀이 없으신 우리 어머니들이 계시니 말이다.

권영민 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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