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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이야기] 가족을 기다리는 은퇴 탐지견 ‘투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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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이야기] 가족을 기다리는 은퇴 탐지견 ‘투터’ 이야기

입력
2016.11.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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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지견으로 활동하다가 은퇴 후 입양을 기다리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투터가 인천시 중구 영종해안북로 정부기관단지 내 탐지견 훈련센터에서 공을 물어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탐지견으로 활동하다가 은퇴 후 입양을 기다리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투터가 인천시 중구 영종해안북로 정부기관단지 내 탐지견 훈련센터에서 공을 물어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공항에 가면 탐지조사요원과 짝을 지어 다니며 짐 가방의 냄새를 맡는 개들을 볼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후보견으로 발탁돼 훈련을 받고 두 번의 엄격한 시험을 거쳐 선발된 마약 탐지견들이다. 현재 국내에는 인천국제공항에 16마리, 김포국제공항에 2마리의 탐지견들이 활동 중이며 34마리가 관련 훈련을 받고 있다.

탐지견들의 훈련 과정은 까다롭다. 3~12개월 된 강아지들을 대상으로 16주간 마약 냄새가 강한 것부터 약한 순으로 찾도록 훈련을 한다. 중간에 부족한 부분들이 발견되면 보완하면서 최종 테스트를 거친다.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 ‘앉아’ 이외에 ‘엎드려’, ‘기다려’ 같은 제지 훈련을 하지 않는 대신 목표물을 찾아냈을 때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수건이나 공으로 놀아준다. 이 같은 보상을 바라고 탐지견들은 열심히 마약을 찾는다. 이상호 관세청 탐지견 훈련센터 훈련팀장은 “간식을 주면 마약이 아닌 간식을 찾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는 흰색 수건을 보상 놀이용으로 사용한다”며 “흰색을 쓰는 것은 염료냄새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훈련 과정에서 탐지견이 마약 냄새를 맡다가 중독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얘기다. 개들이 흡입하지 못하도록 비닐로 포장하는 등 안전장치가 된 마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중독될 염려가 전혀 없다.

고된 훈련을 통과한 개들의 탐지 실력은 뛰어나다. 훈련장에서 만난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하람’과 ‘한빛’은 박정호 탐지견 훈련센터 탐지조사요원과 함께 가방 속 비닐로 싸인 대마뿐 아니라 마약을 소지한 마네킹을 바로 찾아냈다.

관세청은 2012년부터 길게는 10여년 간 현역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탐지견들이나 훈련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개들을 반려견으로 일반에 분양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입찰을 통해 주인을 찾은 경우는 한 마리뿐이다. 국가의 자산이어서 50만~90만원을 내고 분양을 받아야 하고 은퇴견의 나이도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세청은 무상으로 제공하는 증여를 실시했는데 지난달 28일까지 15마리가 일반 가정에 입양됐다.

관세청 소속 허남덕 탐지조사요원이 인천시 중구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은퇴한 탐지견 투터를 쓰다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관세청 소속 허남덕 탐지조사요원이 인천시 중구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은퇴한 탐지견 투터를 쓰다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지난해 2월 은퇴한 탐지견인 수컷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투터’도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투터는 2009년부터 인천공항 여객청사와 화물청사에서 대마, 필로폰 등 25건, 41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적발한 베테랑 탐지견이었다.

지난 2일 투터는 특별한 날을 맞았다. 6년간 함께 활동했던 탐지조사요원 허남덕씨를 인천 중구의 정부기관단지 내 탐지견 훈련센터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투터는 허씨를 오랜만에 만났지만 옛 생각이 난 듯 훈련장에서 공놀이를 하며 정신 없이 뛰어 놀았다.

투터와 허씨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투터는 허씨가 2005년 군산항에서 2건의 신종 마약을 함께 적발한 탐지견 ‘체이스’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하는 작업을 거쳐 탄생한 개다. 관세청은 2007년 우수 탐지능력을 지닌 체이스의 유전자로 일곱 마리를 복제했다. 허씨는 “체이스와 투터는 마약 적발 실적이 모두 우수했고 밥 먹을 때나 마약을 적발했을 때 보이는 반응이 똑같다”며 “다른 점이 있다면 투터는 체이스와 달리 혀에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투터의 뛰어난 성적은 실력과 함께 운도 작용했다. 탐지조사요원들 사이에 ‘가장 행운이 좋은 조사요원과 탐지견, 운이 나쁜 마약소지자가 만나야 마약을 적발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허씨는 “입국장 기둥 뒤에 투터와 함께 서 있는데 대마를 가진 사람이 기둥 옆에 앉아 있는 투터를 단순 반려견으로 착각해 방심했다”며 “갑자기 조사요원을 보자 당황해 가방을 놓치고 도망을 가다가 잡혔다”고 말했다. 투터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마약을 적발한 탐지견이 됐다.

마약 탐지견으로 활동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종 하람이 탐지견 훈련센터에서 박정호 탐지조사요원과 함께 마약 탐지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마약 탐지견으로 활동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종 하람이 탐지견 훈련센터에서 박정호 탐지조사요원과 함께 마약 탐지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마약 탐지견 한빛이 인천 중구 탐지견훈련센터에서 마약을 소지한 마네킹을 찾아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마약 탐지견 한빛이 인천 중구 탐지견훈련센터에서 마약을 소지한 마네킹을 찾아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투터는 아직 새로운 가족을 찾지 못했다. 이지현 탐지견 훈련센터 수의사는 “무턱대고 입양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입양자를 선정하고 사후관리도 철저히 할 것”이라며 “입양을 가지 못하면 탐지견 센터에서 끝까지 보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청은 앞으로도 은퇴견이나 훈련 중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개들을 위한 일반 분양을 계속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으려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허씨는 “아무리 센터에서 잘해줘도 평생을 사람과 함께 활동한 은퇴견들은 옆에 사람이 없으면 쓸쓸해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은퇴견과 시험에 탈락한 개들의 분양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허남덕 탐지조사요원과 투터의 이야기 영상보기

인천시 중구 영종해안북로 정부기관단지 내 탐지견 훈련센터에서 은퇴견 투터가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탐지조사요원 허남덕씨를 보고 달려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인천시 중구 영종해안북로 정부기관단지 내 탐지견 훈련센터에서 은퇴견 투터가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탐지조사요원 허남덕씨를 보고 달려오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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