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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열대야

입력
2016.11.0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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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여름이 얼마나 펄펄 끓었는지 알고 있다. 이런, 사람 마음이란 간사해서 며칠 기온이 뚝 떨어져 몸이 으스스하니 더운 여름이 생각난다. 여름이 그립지는 않아도 다가오는 추운 겨울이 영원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고맙다. 지난여름은 각종 더위 기록을 갈아치우며 우리를 괴롭혔다. 누구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하루 종일 틀어놓고 오수를 즐기는 호시절이었지만, 누구는 누진되는 전기료가 무서워 에어컨을 두고도 선풍기를 돌려야 하는 옹색한 시절이었다.

유강희 시인은 동시 ‘열대야’에서 ‘열대야(熱帶夜)’를 ‘열(10) 대야’로 비틀어 중의적으로 의미를 겹친다. 무지무지하게 더운 여름밤, 선풍기가 덜덜덜덜 열심히 돌아가며 무더위를 몰아내려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한 대야, 두 대야, 세 대야, 네 대야…… 줄기차게 더위를 퍼내고 또 퍼내도 열 대야가 남는 열대야다. 대야는 요즘처럼 입식 세면기가 일반화되기 전에 매일 아침 손을 씻고 얼굴을 씻으려고 마주하는 가장 친근한 생활도구였다. 대야에서 선풍기로 넘어가는 흐름이 느닷없어 보이지만, 선풍기의 둥그런 외형과 대야의 둥그런 외형의 이미지는 아주 닮았다.

재치 있고 가벼운 이런 말놀이 동시도 이 시국에는 풍자시처럼 읽힌다. 대통령이 주범인 최순실 게이트는 퍼내고 퍼내도 아직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국민들을 열 받게 한다. 세월호 비극, 백남기 타살, 민생과 안보 파탄, 권력 사유화, 기업 갈취, 국고 빼돌리기 등 이 엄중한 사태의 방조범인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도 용납되지 않는다. 한 대야, 두 대야, 세 대야, 네 대야…… 국민들은 더 호되게 아픈 매를 때릴 수밖에 없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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