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내며 칭송하던 TV조선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는 특종을 쏟아냈다. 그러나 반성은 없었다. TV조선 화면 캡쳐

“종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해 보면 천만다행입니다.”

지난주 만난 한 정치분석가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반사적으로 “네?”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일리는 있다. 사실 방송의 영향력, 특히 50대 이상 계층에 대한 영향력은 엄청나게 크다. 두 공영방송은 사실상 ‘국영방송’처럼 운영되고 다른 민영 지상파 방송사도 정부 비판적 내용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국민의 눈과 귀가 가려진 상황. JTBC의 ‘태블릿’ 특종과 TV조선의 ‘최순실 동영상’ 특종이 없었다면 정국이 이처럼 급변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특정 시기에 좋은 보도를 했다고 해서 그동안 종편의 과오가 덮어질 수 있을까. 정권의 잘못이나 의혹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마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몰아가고, 조선중앙방송인가 착각할 정도로 북한 뉴스만 늘어놓으며 국민의 안보 불안을 부추긴 것 역시 종편 아닌가.

JTBC가 다른 종편 3사와 달리 독자적 논조를 유지해 온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다른 종편채널은 박근혜 대통령이 ‘몸통’이라 볼 수밖에 없는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종’과 ‘단독’을 자랑하기 전에, “형광등 100개를 켠 듯한 아우라”라고 하면서 칭송했던 과거를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주술 호응도 안 맞는 말을 하고, 기자 질문은 절대 안 받고, 남의 나라 대통령한테 “불쌍한 대통령이 질문을 잊어버리셨네”하고 놀림을 당해도 비판하면 종북이라고 매도하던 종편이다. 대선 국면이 되면 과연 이 채널들이 어떻게 변할까. 그때도 “종편이 있어서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독립적으로 바꾸는 등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 ‘네 편’ ‘내 편’ 편가르기식으로 방송에 접근해서는 정권이 몇 번을 바뀌어도 현재의 시궁창 같은 언론 현실이 되풀이될 것이다.

종편뿐 아니다. 수많은 토론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호하던 한 신문 논설위원은 최근 칼럼에서 갑자기 “근혜는…”이라고 호칭을 빼고 부르며 대통령을 비난했다. 정권의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또 다른 신문이 쓴 ‘부끄럽다’는 사설에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조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을 보며 얼굴이 뜨거워졌다.

부끄러운 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은 밤마다 잠자리에 누우면 창피하고 답답해 잠이 안 온다. 복선은 곳곳에 있었는데, 왜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파고들지 못했을까.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을 배후에서 조정한다” “저희 언니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고 있다”던 박근령ㆍ지만 남매의 글은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분쟁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겼다. 고 김재규 중정부장의 항소이유서에 있다는 ‘최태민-박근혜 전횡’ 내용 역시, 최태민이 죽은 지 20년이 넘었으니 큰 의미가 있다고 여기지 못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MB 캠프 인사들이 최태민-박근혜 관련 의혹을 여럿 터뜨렸으나 제대로 된 근거자료가 없어 명예훼손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하는 것을 보곤 ‘역시 근거가 부족한 음해인가’ 생각했다.

모두 변명일 뿐이다. 국민이 속았어도 기자는 속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사람의 대통령 자격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끄럽다. 늘 긴장감을 갖고 최고권력에 대해 더 치열하게 감시하는 기자의 소명을 다해야겠다고, 너무나 늦었지만 다시 다짐한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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