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미소를 띈 채 서 있다. 신임장 제정식은 파견국 국가원수가 새 대사에게 수여한 신임장을 주재국 국가원수에게 전달하는 행사다. 해당 대사가 주재국에서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는 외교적 의미가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잠시나마 멋있다는 생각이 든 건 서슴없이 ‘그만 두겠다’(AlphaGo resigns)고 선언했을 때다. 자아나 자존심, 감정이라는 본성 때문에 물러날 때를 놓치고 때론 구질구질 해지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패배를 인정하는 건 고수에게도 어려운 일일까. 새누리당 비례대표 초선 배지를 단 조훈현 국수에게 “돌을 던지는데도 시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불계패(집 수를 세어볼 필요도 없는 패배)를 자인할 법한데 버티고 있는 한 분의 심리가 궁금해서다. “제한된 시간이라는 규칙이 있으니 도저히 숨통이 보이지 않을 때, 판세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때는 던지는 게 답이지요.” 흥미로운 건 그 뒤의 말이다. 바둑의 세계에는 그럼에도 돌을 안 던지는 경우가 있단다. 그에 대한 조 의원의 해석은 이랬다. “천재지변이 나서 판이 어떻게 되거나 상대가 엄청난 실수를 하기를 바라는 나쁜 마음”이라는 거다. 조 의원의 한탄이 이어졌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끝까지 가 상대를 힘들게 하는 기사들이 종종 있어서 안타까워요.” 그래도 세상은 공평하다. “남의 실수만 바라는 사람은 결코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게 조 의원이 숱한 승부에서 얻은 지혜다. “절대 왕이 못됩니다. 영원한 하수로 남는 거죠.”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딱 그렇다. 판세는 ‘대체 남은 임기를 채울 수나 있겠느냐’는 걱정이 저잣거리에 넘쳐나는 마당인데 돌을 던지지 않는다. 정당성과 신뢰를 잃은 권력은 권력이 아니니 그만 판을 접고 상징적 존재로 남으라는 고언도 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러곤 두느니 악수요, 패착이다. 첫 번째 기회였던 대국민 사과는 거짓말과 변명으로, 그나마 국민이 너그러워 얻은 두 번째 기회는 여야의 동의조차 무시한 총리후보자 지명으로 날려버렸다. ‘최순실 파문’을 수습하고 국정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려 여권과 시민사회 원로의 의견을 들었다더니 대통령은 그 사이에 자신이 생각해둔 총리 후보자를 독대했다. 이미 각본은 짜놓고 원로들은 배우로 활용한 꼴이다. 남은 임기 1년 4개월 동안 경천동지가 일어나기라도 바라는 걸까. 결코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집요한 권력욕이다. 그동안 반상 맞은편에 앉은 국민은 지쳐가고 국정의 공백은 커져만 간다. 그런 대통령이 국수의 판 읽기를 귓등으로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