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에서 형태의 유사성에 기대서 박근혜를 표기하는 방식이다. 김대중을 ‘김머중’으로, 정유라를 ‘정윾라’로 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표기 방식을 ‘야민정음’체라고 부른다. 이러한 표기방식은 타자수를 줄인다는 점에서 채택되기도 하지만, ‘정윾라’에서 알 수 있듯이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어조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박ㄹ혜의 정치적 잘못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익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지지자들을 실망하게 하고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극우 내지는 우익 성향으로 알려진 인터넷 사이트 일베에서 정치 관련 글들이 주로 올라오는 곳으로는 짤방 게시판(짤게)와 정치 게시판(정게)가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은 짤게에는 ‘박ㄹ혜’라는 표기가 많이 보이고, 나이 든 사람이 많은 정게에는 ‘레카(레이디 가카)’라는 호칭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짤게에서는 ‘박ㄹ혜’ 말고도 ‘노근혜’라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이는 박근혜에 대한 정치적 비판자들이 ‘이명박근혜’라고 해 왔던 것과 비교되는데, 일베 사이트의 정치적 속성상 노무현이 정치적 ‘극혐’(극한적인 혐오)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근혜라는 표현이 일베에 등장했다는 것은 박ㄹ혜의 잘못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드러낸다.

그동안 우익 유권자들 사이의 분열은 세대간 분열과 겹쳐지면서 심각할 정도로 증폭되어 왔다. 박ㄹ혜 당선 이후로, 박근혜를 계속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실정 때문에 박ㄹ혜를 비판하게 된 사람들 사이에 키보드에 의한 전투가 많이 벌어져 왔다. 특히 지난여름부터 일베의 짤게에는 박ㄹ혜를 비판하는 글들이 확연히 많아졌다.

일베의 경우, 박근혜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비교적 나이 든 우익 유저들은 박ㄹ혜를 비판하는 젊은 우익 유저들을 ‘좌좀(좌파 좀비)’ 내지는 ‘분탕 홍어’라고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분탕 홍어’란 ‘분탕질을 하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의 아니게 ‘좌좀’ 내지 ‘분탕 홍어’로 몰리게 된 일베 짤게의 젊은 우익 유저들은 반작용으로 일베의 늙은 우익 유저들을 ‘정게할배’ ‘틀딱’ ‘고바노’라고 부른다.

‘할배’라는 규정은 게시물의 정치 성향에서 뿐만이 아니라 어휘 선택이나 문체 등에서도 글쓴이의 나이가 많다는 것을 추정하게끔 해 주는 단서가 있기 때문에 생겨나고 선택된 것이다. ‘틀딱’은 ‘틀니딱딱’의 줄임말인데, 노년 세대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에서 만들어진 아주 난폭한 어휘다.

일베는 기성 이미지에 유머러스한 글을 곁들인 게시물이나 그 자체로 유머러스한 합성 이미지에 의한 게시물이 중심이었다. 반면에 ‘정게할배’들의 게시물은 이미지가 전혀 없는 경우도 많고, 대체로 너무 길고 진지하고 설교조여서, 젊은 유저들은 그런 ‘할배’들의 재미없는 게시물들을 싫어했다.

지금 ‘정게할배’들은, 최순실에게 놀아난 박ㄹ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라면 좌우를 불문하고 무조건 ‘좌좀’이나 ‘분탕 홍어’로 몰아버린다. 일베의 젊은 우익 유저들은 ‘정게할배’에 의해서, 무조건 “너, 전라도지”라는 추궁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 우익 유저들은 ‘정게할배’들을 ‘고바노’(고향을 바꿔 주는 노인)라고 부른다.

그동안 ‘전라도 = 빨갱이’라는 사악한 프레임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해 왔던 일베의 젊은 우익 유저들은 이제 도리어 그들 스스로가 ‘전라도 = 빨갱이’로 몰리고 있다. 그들은 ‘고바노’라는 세대 혐오적 어휘를 통해서 반발하고 있지만, ‘고바노’의 원흉이 박정희라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한다. 정치적 반대편을 무조건 빨갱이로 모는 ‘고바노’ 갑질은 박정희가 원조다. 전두환, 박ㄹ혜 등은 그 옆에 붙어서 매카시즘의 먹자골목을 차린 것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쭉 정치가 종교고 종교가 정치였다. 박근혜는 자신의 신도였던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핵 폭탄을 발사해서 지지자들 사이에 세대 혐오의 종교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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