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아빠의 죽음에 어리둥절하는 5세 男 육아 상담

"하늘나라에 간 아빠는 언제 돌아오나요?" 묻는 아이에게는 아빠의 사진을 함께 보며 아빠 이야기를 실컷 하는 것이 좋다. 아빠의 흔적을 지우거나 감춰서는 안 된다.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남편이 넉 달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1년 2개월간 투병하는 걸 지켜보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섯 살 된 아들이 아빠를 찾을 때마다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인지 어린이집에 가서는 씩씩하게 “얘들아, 우리 아빠는 하늘나라에 갔다”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대요. 그러면서 집에 오면 “아빠는 하늘나라에서 언제 돌아와?” 묻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왜 안 돌아오냐고 물을 때마다, 저는 매번 무너집니다.

제 나이 마흔, 남편 나이 마흔 여섯에 얻은 아들이라 남편이 아이를 아주 예뻐했어요. 아빠 무등 타는 걸 엄청 좋아해서 집에서 참 많이도 태워줬지요. 주말이면 공원으로 산책도 많이 다녔고, 병원에 있는 동안도 늘 화상통화를 하곤 했어요. 아빠 병문안도 하고, 화상통화 할 때도 환자복을 입고 있어서, 아이도 아빠가 많이 아프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건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이 아이에게 해준 말인 것 같아요. 입관식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아빠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해 드리도록 다섯 시간 정도 아이와 장례식장에 함께 있었거든요. 49재 원불교 행사에도 같이 참여했고요. 하지만 정작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특별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할지 난감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아이가 “아빠 보고 싶다”고 하면 “엄마도 많이 보고 싶어. 우리 같이 아빠 사진에 뽀뽀해주자” 할 뿐이에요. 아이와 아빠가 뽀뽀하고 있는 사진이 들어있는 핸드폰을 잠깐씩 들고 다니게도 합니다.

부모 사랑 듬뿍 받으며 혼자서도 잘 살던 제가 나이 마흔을 앞두고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친구 같은 남편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드러운 사람이라면 친구처럼 살 수 있겠다…. 남편이 떠난 지금, 허물없는 세상의 제일 친한 친구를 잃은 느낌입니다.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친구…. 최근 아들 머리 위로 프라이팬이 떨어져 머리에서 피가 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20분 정도 차에 태워 병원에 가면서 ‘그래, 이제 아들이 아프면 혼자 꿋꿋이 지켜줘야 하는구나’ 싶었죠. ‘외롭다, 서럽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물론 주위에 형님, 아주버님, 동생 내외 등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많아요. 하지만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꿋꿋해야 하는 이유죠.

지금은 직장을 휴직하고 아들을 돌보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지인 만나 놀기도 하고, 차 마시며 책도 읽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 하면 아파트나 키즈 카페 등으로 놀러 다녀요. 집에서 저녁을 해먹고 TV 좀 보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이 9시 반. 아빠랑 셋이 함께 잘 때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자꾸 잠자기 전에 무섭다는 말을 합니다. 어려서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던 걸 겨우 고쳤는데, 요새 다시 자고 일어나면 손을 빨기 시작했어요.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뜬금없이 “우리 아빠 하늘나라 갔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하곤 했다는데, 요즘은 거의 아빠에 대해 말하지 않아요. 저한테도 자주 “엄마, 아빠는 하늘나라 갔지?” 하고 확인하듯 묻곤 했는데, 요새는 아빠라는 단어 자체를 기피하는 듯합니다. 아빠를 다시 볼 수 없음을 조금은 느낌으로 느끼는지 아빠라는 단어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힘 없이 얼버무리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저는 주변인들이 우리 아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안쓰러운 시선으로 대하는 것이 싫어요. 제가 정말 건강하고 즐겁게 잘 키울 자신이 있습니다. 아들이 큰 탈 없이 커서 같이 여행도 다니고, 책도 공유하고, 대화도 많이 하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어요. 편안하게, 소소한 행복을 알아가며 아이가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적당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건강도 꼭 주고 싶고요.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되는 큰 슬픔을 가슴에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일 가슴 아파요. 매일 밤 잠들기 전 “아들, 오늘 행복했어?” 묻습니다. 아이는 “네” 하고 웃으며 대답해요. “오늘 즐거웠어?” 또 묻습니다. 아이는 “네”라고 대답합니다. 매일매일 반복하고 있는 이 질문에 매일매일 지금 같은 대답이 이어지길 소망해요. 그런데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를 느끼는 것 같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아빠를 다시 볼 수 없음을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 걸까요?”

(박수미씨ㆍ가명, 44세, 회사원)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중요한 사람을 잃어버립니다. 상실, 그 중에서도 부모나 자녀, 배우자를 잃는 것은 가장 거대한 상실이죠. 스트레스 척도를 10점 만점으로 할 때, 부모나 자녀, 배우자와의 사별은 10에 해당하는 최극단의,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스트레스예요. 이런 상실의 고통으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실제로 참 많아요. 수미씨. 남편을 잃은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인데, 어린 아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까요. 언제쯤 아빠의 죽음을 사실대로 정확히 설명해줘야 하나, 아빠 없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 많을 겁니다.

상실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반응이 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울이에요. 개인에 따라 강도와 지속 여부, 방식 등은 차이가 나지만, 공통적인 반응으로 우울이 오게 돼 있습니다. 이건 용기를 낸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아무리 용기를 내고 꿋꿋하게 버텨본들 떠난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으니까요. 상실에 따른 우울 반응은 어쩔 수 없이 남겨진 자의 몫이고, 우리는 이 상실감을 잘 다뤄줘야 해요.

상실의 이유가 무엇이든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낍니다.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 그때 내가 좀 더 보살피고 챙겨줄 걸 하는 회한 같은 게 남겨진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왜 항상 잘 해준 기억보다 못 해준 게 훨씬 많이 떠오르는 걸까요. 그래도 수미씨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을 유발합니다. 준비 없는 이별로 인해 죄책감과 미안함을 넘어 원망과 미움의 감정까지 갖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너무나 복잡한 감정이죠. 때문에 어린 아이들은 이걸 나이에 맞게 명확하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지면서 정리를 못합니다. 아이의 나이와 성장 단계에 맞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는 게 꼭 필요합니다.

수미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분들이 아이가 충격 받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기도 해요. “아빠는 미국에 공부하러 갔어”라든가 “돈 벌러 외국에 가서 못 오는 거야” 식으로요. 모르는 게 상처를 덜 받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절대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아이는 엄마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엄청난 불신을 갖게 돼요.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요. 10시간이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합니다. 못 올 수가 없어요. 웹캠이 이렇게 흔한데, 화상통화 한번 안 할 수가 있을까요. 아이는 ‘내가 얼마나 하찮고 별 것 아닌 존재면 전화 한 통 안 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건 드러내지 않은 가족간의 비밀이 되는 것이라서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아이에게도 더 복잡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묘소에라도 찾아가서 아빠를 그리워했을 텐데’, ‘장례식에서라도 아빠를 잘 보냈을 텐데’ 하며 굉장히 분노합니다. 홀로 남겨진 엄마나 아빠는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 고통을 직면하지 못 해 안 보려고 회피하지요. 모든 흔적을 다 없앱니다. 떠난 이의 물건을 다 없애고, 사진을 다 없애죠. 이런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해요.

수미씨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아빠의 사진을 함께 보고, 사진에 입도 맞추고, 아주 잘하는 일이에요. 수미씨. 아이가 아빠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집에도 잘 보이는 곳에 아빠 사진을 걸어놓고, 아빠 얘기도 많이 하세요. 아이 태어나면서부터 찍은 동영상도 자주 보면서 “네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 어떻게 잘 놀아줬고, 얼마나 깔깔댔는지 모두 이야기 해주세요. 이젠 아빠로부터 직접 애정을 받을 수 없으니까 과거로부터 그 사랑을 재각인하고 기억해나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아이가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게 된 것들을 과거 속에서 발굴하고 추출해서 재경험하게 해줘야 해요.

그러다 보면 수미씨가 많이 힘들 거예요. 아마도 감정이 복받칠 겁니다. 아이는 어리니까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면 ‘우리 엄마가 이걸 힘들어 하는구나’ 생각해 더 이상 아빠 얘길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수미씨, 이렇게 말해주세요. “엄마가 눈물이 나는 건 아빠가 보고 싶어서지, 너랑 아빠 얘길 하는 게 힘들고 싫어서가 아니야. 엄마는 우리 아들이랑 아빠 얘기하는 게 참 좋다. 이 시간이 너무 좋아” 말해주세요. “우리가 같이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또 아빠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야기 하는 게 너무 좋아”라고요.

아빠의 분묘나 납골이 있다면 함께 가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가 자식의 도리를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차례나 제사라는 형태를 통해 아빠를 기리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장례식장에 데려가면 아이가 너무 오랜 시간 통곡에 노출돼 좋진 않지만, 의례적인 부분은 다하게 해주는 게 좋아요. 잠깐 서 있게 하고 헌화도, 분향도 하게 하는 게 좋은데, 수미씨는 그렇게 했으니 참 다행이에요.

수미씨의 아들은 아직 죽음에 대한 개념이 미완성인 단계예요. 만 나이 6, 7세 이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개념의 혼란을 겪는 나이라 단어로서의 죽음만 알 뿐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초등학교 3, 4학년은 돼야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에요. 잘 놀다가 뜬금 없이 “아빠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친구들에게 말한다는 건 아이의 생각 속에 아빠의 죽음이 꽉 들어차 있다는 뜻이에요.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 자꾸만 생각이 나는 겁니다. 아이의 말을 그냥 들어주고 받아주세요. 충분히 그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늘나라에 간 게 무슨 뜻인지 아니?” “아빠 얼굴 오래 못 보니까 마음이 어때?” 묻고 이야기하세요. 이런 걸 꼭 해야 합니다.

아이는 지금 분리불안이 생겼을 거예요. 엄마에 대한 엄청난 의존감, 남아있는 엄마마저 없어질 것 같은 굉장한 두려움에 시달릴 겁니다. 엄마가 그저 아프다고만 말해도 너무나 두렵고 극도의 불안을 느낍니다. 당분간 아이에게 ‘아프다’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하지만 수미씨. 이 모든 걸 어떻게 혼자 버텨낼 수 있겠어요. 비행기에 타면 위기 발생시 어른부터 산소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씌워주라고 하잖아요. 수미씨에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아이 걱정 때문에 자신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지만, 엄마가 산소 부족으로 정신을 잃으면 아이한테도 마스크를 씌워줄 수가 없어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 써야 합니다. 아이 걱정하느라 정작 수미씨는 애도 반응을 채 다하지 못한 것 같아요. 본인이 충분히 울고, 슬퍼해야 합니다. 남편의 사진을 보며 울면서 말하세요. 혼자 가버려서 섭섭했다고, 왜 나를 두고 혼자 갔냐고 원망도 해보고, 고맙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 그런 말들도 쏟아내 보세요. 혼자 하기 너무 힘들면 부모든 친구든 형제든, 위로해줄 사람을 곁에 두고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전통적 의례로는 49재, 의학적으로는 2개월이 지나서도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슬픔에 잠식돼 있을 경우, 정상적 애도 반응에서 우울증으로 넘어간 것으로 봅니다. 49재 지나서는 빨간 옷도 입으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저 깊은 마음의 심연에 떠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안정된 심상으로 자리를 잡아야 일상 생활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수미씨. 자신에게 몰두해서 남편과의 기억들을 한번 글로 써보면 어떨까요? 사진들을 보면서 이땐 이랬지,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이런 식의 언어화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아이와 그 작업을 함께 하면 훨씬 더 좋고요. 아이랑 담담히 아빠의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 곁에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 보세요.

남편의 죽음이 수미씨의 노력으로 해결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듯, 지금의 고통도 수미씨 혼자 꿋꿋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상실에 따른 애도 반응은 당연한 것이고, 극히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 과정을 잘 겪어야 극복할 수 있어요. 이걸 뛰어넘는다든가 억제, 회피하는 건 더 힘들어질 뿐이에요. 많이 울고, 많이 이야기하세요. 그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아빠가 곁에 있으면 더 좋겠지요. 하지만 아빠가 나를 낳아 이렇게 키워줬고, 나를 이렇게 사랑했었다는 것, 그 사실을 잘 알고 마음의 상 안에 고이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아이는 지금 자기 나이에 맞는 자연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엄마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아빠가 남겨준 사랑이라는 위대한 유산의 힘으로, 인생의 위기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아빠는 부재하는 실재로 수미씨와 아들 사이에 자리잡아 온전한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해줄 겁니다. 수미씨, 힘을 내세요. 당신은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정리=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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