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라오스)=뉴시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9월7일 밤(현지시간)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갈라만찬이 열린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 만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최순실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만 일본은 착실히 외교에 속도를 내며 전진하고 있다. 당장 러일관계가 급진전되는 분위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내년 1월 중의원해산을 단행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도쿄 정가에선 ‘일러(日露) 해산’이라 불릴 만큼 정권 측이 공들이는 부분이다. 12월15일 야마구치(山口)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그 평가를 국민에 묻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임기연장을 결정해 사실상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치르게 된 것도 모자라 외교업적을 내세워 국회 내 세력을 더 불리겠다는 것이다.

이토록 숨돌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이유는 예정대로라면 2018년 겨울에 중의원선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론분열을 가져올 헌법개정 스케줄을 보나 아베노믹스 약발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점에서나, 인기 좋을 때 한발 앞을 대비해가는 셈이다.

러일정상회담을 통해 일본 국민에게 내놓을 승부수는 쿠릴열도 4개섬, 이른바 ‘북방영토’ 회복이다. 올해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원폭지 히로시마(廣島)로 데려와 고개 숙이게 만든 아베가 이번엔 일본국민의 우익적 자부심을 관통할 영토회복을 노리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영토문제는 크게 3가지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쿠릴섬, 그리고 독도가 있다. 센카쿠는 방어해야 하지만, 북방영토와 독도는 러시아와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러일간 2개섬 우선분할이나 공동통치, 홍콩식 반환선언 후 단계적인 인도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안팎에서 거론된다는 관측이다. 일본이 쿠릴섬을 되찾을 경우 독도에 대한 영유권 공세는 더욱 집요해질게 뻔하다.

또 러일 접근은 동북아 세력균형을 재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일본 외교의 핵심은 중국견제로 수렴된다. 그런데 잘 먹히지 않고 있다. 동남아 무대가 전통적인 일본의 텃밭이었지만 중국의 등장으로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과 밀착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서 보듯 중국의 구심력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두테르테가 이번주 아베와의 정상회담에서 “필리핀과 일본은 중국에 대해 같은 입장이다” “항상 일본 편에 서겠다”고 말한 게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일본이 매달리는 필리핀은 내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의장국이다.

물론 일본 외교의 한계와 딜레마는 여전히 명확해 보인다. 일본은 왜 국제기구에 대한 많은 재정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걸맞은 국제정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까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이유는 분명하다. 국제사회 미래상이나 보편적 문제에 대한 비전이 유별나게 약하기 때문이다. 지도층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당연히 대표적 원인이다. 주변국과 가까워질 고비마다 찬물을 끼얹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일본 총리가 직접 참배나 공물봉납을 고집하는 것은 주변국 압력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과시함으로써 자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가 간섭해선 안될 일본인 ‘마음의 문제’란 주장이지만, 정작 일본의 마음이 협소한 점이야말로 일본외교에 치명적이다.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분노하고 위안부자료 채택을 막기 위해 올해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를 보류한 것을 두고 일본 내에서도 “치졸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작은 모습들이 역사를 무기로 한 주변국의 대일공세 명분만 강화시켜주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일본에선 국제정세의 냉혹한 변화를 절실하게 걱정하고 대비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일본외교의 모순을 떠올리면서도 일본TV를 통해 지금 한국소식을 지켜보는 것은 참 고역이다. 흔히 나오던 ‘김정은 왕조’ 화면이 한국언론을 인용한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일가 비화로 대체되고 있다. 해외에서 접하는 국격이 정말 말이 아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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