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란 어떤 존재일까. 국가 운영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행정가라면, 국민 생각을 대의 한다는 점에서 정치가다. 그래서 헌법 제66조 1항에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쓰여 있다. 국민이 투표를 통해 권력을 위임한 만큼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 행사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헌법 제66조 2항에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적혀 있다.

지난 며칠 동안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 사태’는 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대통령이란 존재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선출된 대통령에게 새롭게 지지를 보낼 수도, 아니면 철회를 할 수도 있다.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지지는 집권 초반에 매우 높았지만 후반에 와선 크게 떨어졌다. 노태우정부에서 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집권 초기의 상당한 기대는 집권 후기의 차디찬 환멸로 귀결됐다. ‘기대와 환멸의 사이클’은 민주화 시대 역대 정부들을 특징지은 현상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환멸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그래도 많은 국민이 정부와 이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국민의 한 사람인 나를 지켜준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이러한 신뢰는 국가라는 공동체가 지속하는 기본 조건이다. 이 신뢰의 다른 이름이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명명한, 정부의 지배를 유지시키는 정당성(legitimacy)이다.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의혹 사건의 본질은 이러한 믿음ㆍ신뢰ㆍ정당성을 뿌리째 뒤흔들었다는 데 있다.

앞서 말했듯 대통령이 국민의 투표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인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그 대리인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아무런 정치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JTBC와 한겨레신문 등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국민은 경악했고 참담해 했고 또 분노했다. 정치가 이성과 감정의 결합체라는 점에서 배신감까지 느낀 이들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5,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5,000만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선진국의 입구에까지 다가섰다고 자부했던 이 나라를 이끄는 정부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였다는 말인가. 이게 정상적인 국가인가. 사건의 실체는 서서히 결국 밝혀지겠지만, 의혹만으로도 국민은 크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의 고하(高下)에 관계없이 30년에 가까운 민주화 시대에서 초유의 사태다.

사건의 성격상 대통령이 어떤 대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로 인한 국민의 분노와 상처를 누그러뜨리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정당성 고갈로 인한 ‘통치의 사실상의 불가능성’이다. 이번 사태가 갖는 심각성은 앞선 정부들이 겪은 집권 말기의 통상적인 레임덕을 넘어선다는 점에 있다. 정당성의 상실로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라는 영(令)이 서지 않을 터인데, 영이 서지 않는 상태에서 통치를 계속하는 것은 국민과 국가 모두에게 더 큰 상처와 불행을 안겨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사회는 인적 쇄신, 특검, 국정조사, 거국내각 등의 대처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일각에선 탄핵과 하야의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와 정부의 부분적 인적 쇄신에만 그칠 경우 이번 사건으로 인한 권력 공백과 통치 불능 상황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성장ㆍ불평등ㆍ북핵 위기 등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들이 산적한 상태에서 내년 12월 대선까지 사실상의 통치 불가능성에 빠질 정부를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심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체하지 말고 사건의 실체 규명을 위한 조사는 물론 거국적 중립내각의 구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헌법이 강조했듯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이자 국가의 대표라면, 이런 대통령의 자리에 걸맞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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