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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학, 말 그리고 개

입력
2016.10.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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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는 천하 사람들의 공공재이다. 그래서 ‘천하위공’(天下爲公)이란 정신이 수천 년 전부터 절대불변의 진리로 표방되어 왔다. 옛날 허유란 현자가 천하를 주겠다는 요임금의 제안을 거절했던 까닭도 천하란 그렇게 개인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역사를 보면 국가가 자기 것이라고 우긴 군주가 절대다수였다. 춘추시대의 일이었다. 위나라 제후 의공은 학을 무척 좋아하여 그들을 대부에 봉하고 대부 전용 수레를 하사했다. 당시 대부는 국정 전반을 지탱했던 나라의 근간이었다. 학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군주의 사적 기호품에 불과했던 학을 국가의 중추 급으로 대접했다.

당연히 대부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뒤집어 보면 졸지에 자신들이 학과 동급이 됐기에 그렇다. 그러던 어느 해(기원전 660년), 적(狄)이라 불리는 북방 유목민이 침공해왔다. 다급해진 의공은 대부들에게 출정을 명하였다. 그러자 대부들은 작위를 받은 학들이나 출전시키라며 이죽거렸다. 하는 수 없이 의공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다. 결과는 대부와 학의 경중을 구분 못 했던 이다운 대패였다. 군사도 크게 도륙당했고 자신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춘추좌전’에 전하는 얘기다.

의공이 그렇게 전사하고 두 세대쯤 흘렀을 즈음 초나라엔 말을 끔찍이 사랑했던 군주가 있었다. 바로 장왕이다. 그는 말에게 화려한 비단옷을 입히고 전용 침대를 제공했으며 말린 육포를 먹였다. 웬만한 귀족도 다 갖추고 살기 힘든 수준으로 말을 대했음이다. 그러나 말은 본성상 달려야 하는 초식동물이었던지라, 얼마 못 가 고도비만으로 죽고 말았다. 크게 상심한 장왕은 대부의 예로 장례를 치르라 명하고는, 이에 토를 다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죽이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당시 초나라에는 우맹이란 기인이 있었다. 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궁궐로 달려가 하늘을 우러르며 울부짖었다. 초나라에선 내로라하는 유명인이어서 그런지, 그의 행동은 바로 왕에게 보고됐고 왕은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우맹은, 초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왕께서 총애한 말의 장례를 고작 대부 급으로 치르냐며 통곡했다. 응당 군주급으로 격상시켜 장례를 치름으로써 대국의 위엄과 풍모를 대내외에 아낌없이 드러내야 한다고 소리쳤다. 장왕은 우맹의 속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의공과 달리 그는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을 줄 아는 군주였다. 그는 명을 다시 내려 죽은 말을 사람의 뱃속에 장사하였다. ‘사기’ ‘골계열전’에 나오는 일화다.

이번엔 개를 총애했던 사람 얘기다. 역시 초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사람이 집을 잘 지킨다는 이유로 개를 총애하였다. 그런데 그 개는 늘 우물에 오줌을 눴다. 이를 본 이웃이 개 주인에게 알려주려 하였다. 그러자 개는 그것이 싫어서 문을 지키며 으르렁거렸다. 이웃 사람은 그 개가 두려워서 들어가 말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 개가 잘 지켰던 것은 집이 아니라 자신이었으며, 이를 분별하지 못했던 개 주인은 매일같이 개 오줌이 섞인 물을 마시면서도 개를 총애하였던 것이다. 춘추시대 다음인 전국시대의 역사를 전하는 ‘전국책’에 실려 있는 얘기다.

그래서 한비자는 “무릇 나라에도 그러한 개가 있다. 도를 깨친 인재가 학술을 품고서 천자를 지혜롭게 하려 해도, 대신이 사나운 개가 되어 앞서 나와 그 사람을 물어버린다. 이것이 군주가 가려지고 협소해지는 까닭이며, 도를 지닌 인재가 등용되지 않는 까닭”이라고 일갈했다. 2,000년도 더 된, 먼 옛날얘기가 아니다. 인용문의 대신과 군주를 가령 비선 실세와 대통령으로 바꾸면, 영락없는 지금 여기의 얘기기도 하다.

위의 개들은 주인이 주는 대로 받기만 했던 의공의 학이나 장왕의 말과는 다르다. 그들은 주인의 총애를 등에 업은 채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주인이라도 서슴없이 속인다. 옛날에나 가능했던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버젓이 헌법에 명기된 오늘날에도 그런 부류가 대놓고 활개 친다. 국가를 자기 것으로 여긴 결과다. 민주주의로 선출된 위정자임에도 국가를 사적으로 소유했고, 물밑에서 그런 위정자를 재차 사적으로 소유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이들의 영혼에는 ‘천하위공’을 위한 자리가 없었음이다. 그런 정신은 그득 들어찬 탐욕과 독선에 물어뜯긴 지 오래였다. 하여 그들에겐 나라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전쟁을 일으켜 온 성과 들판을 시신으로 가득 채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맹자가 그건 사람을 위해 땅을 늘린 게 아니라 땅에 인육을 먹인 꼴이라며 절규했지만, 그저 ‘개 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경전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탓할 수도 없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며 그저 기다릴 수도 없다. 비정상도 오래되면 정상처럼 여겨진다. 잘못을 즉시즉시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사랑하는 학과 말과 개들을 위해서라면 전쟁이라 하여 굳이 마다치 않을 듯싶어하는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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