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재개발 지역의 오모 할머니가 살던 집. 지난 8월 강제로 철거가 집행돼 할머니는 거처를 옮겼지만 할머니가 쓰던 세간이 그대로 남아있다.

“경찰이 사람을 죽였어요.”

유난히 무더웠던 8월 중순, 아직도 그 문자를 받았을 때의 떨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미국 출장을 떠난 선배가 제보를 제게 전달해 준 것입니다. 점심을 먹다 말고 뛰어나가 택시를 탔습니다. 움츠러드는 긴장에 두근거림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다급하지만 무거운 목소리로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보자는 경찰과 119구급대가 시신을 싣고 가는 것을 몸으로 막고 있다며 언제 오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날따라 꽉 막힌 도로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습니다.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져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용산 근처 고가도로 위에서 내려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보자가 알려준 위치는 용산초등학교 근처. 10여분간 뛰어다녀 땀으로 범벅이 된 제 눈 앞에 경찰들과 구급차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살인사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경찰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 경찰들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살인사건 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경찰 옆으로는 미동 없이 누워있는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걸어가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경찰이 증거를 없애지 못하게 만들고, 목격자를 확보하고, 10분 내로 기사로 나갈 수 있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자.’ 동시에 곧 보게 될 변사자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누워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건드리지 마, 이놈들아!”

119대원이 누워 있던 오모(73) 할머니 근처로 다가가자 할머니는 가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경찰에게 살인사건을 추궁하던 저는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돼 할머니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살아 계셨습니다. “살아 계시네요?” “네.” 119대원과 어색한 대화가 오간 뒤 저는 제보자 권모(70)씨에게 가서 상황을 따지듯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 정도 상태면 돌아가신 거나 다름이 없죠.”

할머니와 이웃이라는 이모(62)씨가 자초지종을 들려줬습니다. 용산 지역 재개발과 관련된 오랜 갈등이 엉뚱하게 불거진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재개발 예정 지역인 3,800평의 땅은 코레일이 소유한 부지였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1981년에 김씨라는 성을 가진 사람에게 지금 시세로 3,000만원을 주고 집을 사서 25년 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코레일이 재개발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합의금을 받고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났고 지금은 오 할머니 등 7명만 남아 이곳에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보자는 이곳을 이슈화시켜 보상금을 올려 받으려고 하는 사기꾼이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었습니다.

할머니는 25년 동안 살았던 집에 계속 살게 해달라고 힘 없이 말했습니다. 보상금을 받아도 갈 곳도, 가족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법원에서 퇴거명령서가 나온 날이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찾아간 집은 이미 전기톱을 든 인부 4명이 철거하고 있었습니다. 안방 벽은 무너졌고 부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할머니는 그 폐허 위에 조용히 누웠습니다. “도와드릴게요 할머니. 119를 따라서 병원 먼저 가세요” 라고 제가 권유했지만 할머니는 “안돼. 병원 가면 집이 없어져”라며 그곳에서 차디찬 콘크리트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집은 할머니가 25년간 이웃과 함께 울고 웃었던 공간이었습니다.

서울 용산구의 재개발 지역에 철거 도중 방치돼 있는 집.

옆집 할머니가 조용히 들어오더니 누워있는 할머니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벌써 며칠째 할머니께 죽을 쑤어 먹여주고 있다고 말하던 옆집 할머니는 “이 동네가 오 할머니의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집 또한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집을 철거하는 사람들은 법원의 퇴거명령서를 들고 와 합법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용역직원들이었습니다. 또한 재개발 지역과 보상이라는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가슴 아픈 상황만으로 기사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경찰의 살인사건도, 철거촌 할머니의 이야기도 기사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살인사건이라는 해프닝으로 시작했던 하루가 철거촌 사연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무너진 건물들을 뒤로한 채 마을을 떠났습니다. 마음 한 켠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살인사건 제보가 아니라 집을 잃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연을 제보했어도 이렇게 다급히 현장에 올 수 있었을까. 그늘 속에 가려진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기자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제게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신 살인사건 제보자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철거촌 할머니께도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할머니, 비록 기사를 쓰지 못했지만 저만의 기사로 마음 속에 언제나 간직하겠습니다.”

글ㆍ사진=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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