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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더치페이가 좋을까

입력
2016.10.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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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 주간지와 인터뷰했다. 주제는 요즘에 사회적으로 많이 이야기 되는 김영란법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이 법 때문에 한국에서도 외식할 때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싶어, 프랑스인으로서 이에 대한 생각을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말했다. 나는 더치페이가 싫다고. 프랑스인이지만 그런 문화가 늘 마음에 걸린다. 물론 프랑스에서는 늘 더치페이를 했다. 학생 시절에 친구에게 밥 사준 기억이 거의 없다. 식당에서 계산서가 나오면 친구들은 자기가 뭘 먹었는지, 그 음식이 얼마인지 계산해서 각자 포켓에서 돈을 꺼내 놓는다. 돈 계산이 빠른 친구 하나가 돈을 꼼꼼하게 확인해서 종업원에게 건넨다. 거스름돈을 받게 되면 누구누구에게 얼마를 돌려줘야 하는지 알아서 정리한다. 요즘은 신용 카드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한 사람 카드로 식사비를 내더라도 나머지 사람한테서 현금으로 돈을 받는다. 어떤 때는 식당 웨이터가 여러 신용카드를 긁어야 결제가 끝날 때도 있다. 프랑스는 개인주의와 구두쇠 성향이 강한 민족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산다.

한국은 다르다. 밥값을 각자 지불하지 않고 어느 한 사람이 전체 밥값을 다 내기 때문에 결제과정이 간단하다. 다만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돈을 다 내려고 하다 보니 복잡할 수도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식당에서 사람들이 서로 계산하겠다며 싸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서로 안 내려고 하는 프랑스 사람하고 완전히 반대라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상대방이 계산 못 하도록 큰 소리 내며 서로 지갑을 빼앗기까지 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식사 전에 조용히 신용카드를 계산대에다 미리 맡기거나 식사 중 잠깐 다녀오면서 계산하는 거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한다. 솔직히 말해 이젠 먼저 내려고 싸우지 않으니까 옛날만큼 재미가 없다.

재미 있다, 없다는 걸 떠나서 김영란법이 생기는 바람에 한국의 전통적인 계산 문화가 사라진다면 참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밥을 먹는데도 각자 자기가 시킨 음식값만 딱 잘라 지불하는 것과 모임에서 한 명이 다른 모든 친구 밥값까지 내주는 것, 두 방식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단체 문화를 중요시하는 후자를 택하겠다. 다시 말해 프랑스식 말고 한국식 계산 문화를 따르고 싶다. 한 자리에서 밥값을 딱 잘라 나눠 내는 것보다 그런 정 있는 한국 방식이 훨씬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친구와 밥을 먹으면, 오늘은 내가 밥값을 내고, 다음엔 친구가 내게 된다. 말 안 해도 서로 돌아가면서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얻어먹으려고만 하는 친구라면 점점 관계가 멀어지고 결국 모임에서 빠지게 된다. 나름 굉장히 공평한 시스템이라 지금까지 이 문화가 유지되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늘 나이가 더 많은 쪽에서 밥을 사는 문화에 대해서는 유교 사상을 잘 모르는 프랑스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낄 수 있다. 밥값을 계산할 때 중요한 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누가 더 경제적 여유가 있나, 없나 아닐까 싶다. 더 여유 있는 쪽에서 계산하는 것,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아무 기대 없이 정말 좋은 마음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잘 해주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자기 이익을 고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한국 사회 특징 중의 하나인데 서양인 눈으로 보면 별로 좋은 느낌이 안 든다. 만약 더치페이가 사회적으로 정착이 된다면,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이 개선될까. 서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좋은 건데, 정말 가능할까. 그렇게 되면 한국의 아름다운 정(情) 이란 미덕은 어디로 갈까.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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