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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의 반려배려] 나이 든 내 강아지, 더 많이 사랑하기

입력
2016.10.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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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달님이 즐겁게 산책하던 모습. 신영아씨 제공
생전 달님이 즐겁게 산책하던 모습. 신영아씨 제공

얼마 전 호기롭게 동물병원 간호사 체험을 자청했다. 반려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상담 데스크 뒤편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 청소나 간단한 물품 정리 등은 도울 수 있을 것 같았고, 성격이 순한 동물이라면 달래주고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과 달리 아직 동물병원 간호사 자격제도가 없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정부에서는 수의사의 지도로 기초 진료행위를 할 수 있는 수의간호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바쁘게 돌아가는 수술실과 진료실에서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병원이다 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몸이 아파서 오는 동물들 천지였다. 이 가운데는 간단한 처치만 하고 돌아가는 동물환자도 있었지만 산소실에 들어가야만 버틸 수 있는 응급 동물들도 여럿이었다. 병원에 머문 것은 고작 이틀이었지만 두 마리의 개가 세상을 떠났고 세 마리가 수술을 받았으며 이미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거나 수술을 앞둔 동물들로 병원은 북새통이었다.

동물 환자 중에는 노령견들이 특히 많았다. 보통 열 살이 넘은 환자들인데 사람으로 치면 일흔을 넘긴 셈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동물들도 신체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들은 자신이 아픈 곳을 숨기려는 특성이 있고, 아픈 증상을 이야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 이를 지켜보는 반려인들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수의사와 간호사들이 입원 동물들을 돌보는 중 유독 동그란 눈의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 한 마리가 검사를 받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왔다. 보호자는 반려견이 밤새 고통에 시달리고 끙끙대서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열네 살 ‘달님’은 복강 내 종양이 이미 많이 번졌고 복수가 찬 상태였다. 다니던 동물병원에서는 달님의 안락사를 권했다고 하는데 보호자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그란 눈이 유독 매력적인 달님. 신영아씨 제공
동그란 눈이 유독 매력적인 달님. 신영아씨 제공

보호자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달님이 수액을 맞는 동안 내내 눈물을 쏟으면서도 “잘했어” “고생했어” “힘들었지” “아이고 예뻐”라고 말하며 달님과 눈을 맞추며 안심시켰다. 열세 살이 된 우리집 반려견 ‘꿀꿀’과도 ‘언젠가는 이런 작별의 시간이 오겠지’라는 생각에 괜히 눈물이 났다. 진료실에서 그냥 달님이 예뻐서 찍어둔 사진을 보호자에게 전달했고, 이를 본 보호자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호자에게 쓴 커피와 휴지를 건네주는 게 전부였다. 퇴원하는 보호자와 달님을 보면서 달님이 꼭 한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호자와 행복한 시간을 갖기를 바랐다.

달님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중 보호자로부터 퇴원 당일 밤늦게 결국 달님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열흘 뒤 보호자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달님이 죽기 직전 정신이 잠깐 멀쩡하게 돌아와서 “더 많이 사랑한다, 고맙다 이야기 못 해준 것과 좋은 곳에 데려가지 못한 것, 맛있는 거와 좋은 거 많이 못 사준 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설사 넓은 곳에서 맛있는 것만 먹으면서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렇게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가족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달님은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노령견을 키우는 한 사람으로서 달님 보호자의 마지막 조언을 성실히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와 더 많이 이야기 나누시고, 예쁜 사진도 많이 찍으시고, 많은 시간 함께 보내세요.”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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