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의 TV 다시보기]

MBC 일일극 ‘워킹맘 육아대디’는 살림을 도맡아 하는 남편과 일하는 아내를 그린다. MBC 제공

“추석 때도 결방해 얼마나 아쉬웠는지….”

요즘 결방해서 아쉽다는 말을 듣는 드라마가 몇이나 될까. 그것도 일일극 중에서. 출생의 비밀도 모자라 살인이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 틈바구니 속에서 그나마 ‘착한’ 드라마를 발견했다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이 착한 드라마는 건전하고 건강한 공론의 장까지 마련하고 있다.

MBC 일일극 ‘워킹맘 육아대디’는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워킹맘들에게 인기가 높다. 둘째를 임신해 회사에서 자진사퇴 압박을 받는 아내 미소(홍은희)를 대신해 육아휴직을 내고 살림살이를 하는 재민(박건형)은 백설공주를 구하러 온 백마 탄 왕자보다 멋지다.

10일 방송(100회)에선 미소가 유명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자 “아내를 위한 자리”라며 자신은 회식 자리를 마다하고 집으로 향했다. 딸의 소풍 날짜를 잊어버려 김밥 걱정을 먼저 하는 것도 미소가 아니라 재민이었다. 김밥을 대신 싸다 주는 이는 손아래동서로 전업주부를 선포한 일목(한지상)이다. 두 남자는 아파트 단지 내에 ‘육아품앗이센터’까지 만들어 아이보기 힘든 워킹맘들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대대로 이어진 의사 가문에 가부장적인 남편으로 살아온 산부인과 의사 혁기(공정환)는 가족을 위해 손수 갈비찜도 만들고, 임신한 간호사에게 육아휴직도 권한다. 아무리 봐도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아이 둘을 키우는 한 30대 워킹맘은 “아내가 회식이라 대신 애들 보러 퇴근하려고 한다는 재민의 말은 ‘사랑해’를 남발하는 어느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의 말보다 달콤했다”고 했다. 짜증 섞인 말투와 행동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기며 사무실을 나서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는 얘기다. 그래서 워킹맘들 사이에선 ‘워킹맘 육아대디’가 ‘속풀이 드라마’로 통한다.

여자들에겐 훈훈한 에피소드가 즐비하니 드라마를 처음 보는 남편들이나 ‘시’자가 앞에 붙는 분들이라면 아연실색할 할 듯하다. 아니 화가 치밀지도 모르겠다. ‘워킹맘 육아대디’에선 아내들이 남편에게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을 달고 산다. 드라마 ‘단팥빵’과 ‘위대한 유산’ ‘지고는 못 살아’에서 당당한 여성들을 그렸던 이숙진 작가의 화법은 워킹맘들에게 근사한 잔치 상이다. 처음 일일극을 집필하면서 ‘막장’의 유혹을 뿌리친 이 작가의 미담 향연이 진보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 게시판엔 평가가 엇갈린다. “방글이 엄마는 정말 완전 여왕이다. 적당히 좀 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시청자도 있다. “미취학 아동과 저학년 아이를 둔 워킹맘들의 퇴근시간 조정 등의 정책도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긍정적인 공론장이 펼쳐진다. 그래서 추석 결방이 안타까웠다는 워킹맘들이 많다. 시댁식구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추석 때 워킹맘 며느리들의 속앓이를 시원하게 이야기해 볼 기회가 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로 대리만족만 해야 하는 워킹맘들의 하루가 대한민국의 여자들에겐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다.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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