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이몽<5> 부산 화명동 '인터화이트'

부산 북구 화명동의 다세대주택 인터화이트. 다세대와 상가, 단독주택이 결합된 인터화이트는 도심에서 모여 살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윤준환 제공

K팝, K뷰티처럼 K건축이 있을까. 지난 5월 열린 베니스비엔날레건축전에서 한국관이 세계 무대에 내놓은 K건축은 다세대ㆍ다가구주택이었다.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덕지덕지 증축한 발코니와 쇠창살로 가로막힌 반지하에서 ‘국가대표’의 면모를 찾기는 어렵지만, 개발 논리에 매몰된 한국 주택건축사의 민낯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자는 시도였다.

사는(buy) 집에서 사는(live) 집으로 주택 본연의 기능이 회복되는 지금, 다세대주택의 미래를 모색하는 일은 중요하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다세대주택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다세대와 상가, 단독주택이 결합된 부산 화명동의 인터화이트는 도심 공동체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집안에서 살금살금 “내 집 갖고 싶어요”

아파트에서 살던 30대 중반 부부의 내 집 짓기는 층간 소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아내의 고통이 특히 심했다. “흔히 위층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아래층에서 나는 소음도 만만치 않아요. 심지어 소음이 대각선으로도 전달되더라고요. 집에서 저도 모르게 살금살금 걷는 걸 보면서 아파트 탈출을 결심하게 됐어요. 런닝머신 위에서 마음껏 뛰어도 되는 집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전원주택을 짓기엔 두 사람 다 젊은 직장인인데다가 편리한 도심 생활에 몸이 익어 있었다. 카페, 은행, 약국, 병원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화명동이다. 북구 화명동은 1990년대 중반 부산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금곡동, 덕천동과 함께 제1기 신도시로 개발됐지만, 서쪽 화명3동의 일부 구역은 개발에서 제외돼 있다. 필지가 신도시처럼 네모 반듯하지 않고 들쑥날쑥하지만 덕분에 땅값이 좀 더 쌌다.

주인 부부가 사는 단독주택 내부. 1층에서 2층 주방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거실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아파트처럼 큰 거실이 필요 없는 부부는 이곳에서 취미 생활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윤준환 제공
단독주택 3층의 침실. 깔끔한 성격의 아내가 긴 주방을 원했다면 남편이 원한 건 큰 사이즈의 침대와 TV가 있는 방이었다. 윤준환 제공

부부가 처음 오신욱 건축가(라움건축사사무소)를 만나 이야기한 것은 일반적인 상가주택이다. 4층 높이로 올려 1, 2층을 임대 주고 3, 4층을 복층집으로 꾸미면 내 집 짓기와 임대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건축가는 건축주와의 대화에서 “단독주택에 대한 열망”을 보았다.

“상가주택을 지을 때 많은 분들이 실수하는 게 임대수익 때문에 자기 거주환경을 포기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도심의 상가주택은 경제성의 논리 때문에 항상 상가가 주가 되고 주거공간은 그 위로 내몰렸습니다. 하지만 이왕 아파트를 나와 내 집을 짓는 거라면 욕심을 좀 부릴 필요도 있어요.”

대지 면적은 208㎡(63평). 땅이 작지 않으니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을 둘 다 짓자는 건축가의 제안에 건축주는 반색했다. 뒤틀린 사다리꼴 형태의 대지를 따라 직사각형의 4층 다세대 건물과 그것을 감싸는 ‘ㅅ’자 모양의 3층 단독주택을 배치하니 땅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필요한 면적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단독주택은 아이가 없이 둘만 사는 부부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 거실 대신 주방을 크게 만들고 침실과 운동실 외 나머지 공간은 용도를 특정하지 않고 비워뒀다.

다세대주택과 단독주택 사이의 출입구. 하얀 박스가 뒤틀려 쌓인 듯한 다세대주택의 외관이 눈길을 잡아 끈다. 윤준환 제공
다세대, 21세기의 마을 공동체

아파트 특유의 덩그런 거실은 없어졌지만 아내는 냉장고 3대를 넣을 수 있는 8m 길이의 주방에 대만족이다. “이전처럼 대가족이 모일 일도 잘 없는데 큰 거실은 낭비인 것 같아요. 오히려 ‘거실엔 소파, 작은방엔 컴퓨터’하는 식의 규정에서 벗어나니 생활이 자유로워져 좋더라고요. 비 오는 날엔 계단에 쭈그려 앉고 햇빛 나는 날엔 볕 좋은 곳을 찾아 눕기도 하고요.” 다세대 건물 1층엔 옷가게가, 2, 3, 4층엔 투룸이 한 세대씩 들어섰다.

나란히 선 다세대와 단독주택은 계단실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만 독특한 외관 때문에 ‘한 무리’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건축가는 각 세대의 개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얀 박스를 어긋맞겨 쌓은 듯이 다세대 건물을 디자인하고, 옆의 단독주택에는 파사드 같은 흰 구조물을 덧대 다세대의 평평한 정면과 연결시켰다.

“뒤틀린 땅 위에서 (단독주택의)내부를 직각으로 만들려면 도로의 선과 어긋날 수 밖에 없어요. 그럼 땅이 부정형이란 게 드러나고 도시 환경 면에서도 좋지 않죠. 구조물을 덧대 건물이 도로와 수평을 유지하게 하고 바깥 시선으로부터 내부를 가리는 역할도 겸했습니다.”

단독주택 겉에 파사드 형태의 덧구조물을 씌워 다세대주택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주변 시선으로부터 내부를 가렸다. 윤준환 제공
인터화이트 뒷모습. 왼쪽 단독주택과 오른쪽 다세대주택 가운데 계단실을 배치해 양쪽 건물을 분리하는 동시에 연결했다. 윤준환 제공
다세대주택 계단실 내부. 창을 작게 내서 햇볕이 핀 조명처럼 떨어지는 효과를 냈다. 윤준환 제공

따로 또 같이 선 두 건물의 관계성은 집 주인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주변의 흔한 원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땅도 원래 원룸 16가구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곳이었다. 그러나 땅을 매입하고 다세대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부부는 한 층에 한 세대씩만 두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욕심 부리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같이 사는 사람이 행복해야 내 삶의 질도 올라가요. 자기가 살 집처럼 짓지 않으면 결국 고생하는 건 집주인이거든요. 원룸에 살던 사람이 숨졌는데 며칠씩 아무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건물의 주인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주인집과 비슷한 면적의 다세대주택은 주방을 기준으로 방과 거실을 분리해 거주자들이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짰다. 작지만 빨래를 널고 음식물 쓰레기를 놓을 수 있는 발코니도 만들었다. 주인집 옥상은 주인뿐 아니라 세입자들에게도 개방돼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 관계라 친구처럼 가깝진 않지만 이곳에서 네 가구가 종종 모여 치킨 파티를 열기도 한다. 아내는 옥상에 너른 평상을 들이고 캐노피까지 달아 예쁘게 꾸몄다.

건축가는 다세대주택의 주체가 과거 집장사에서 친지, 이웃, 협동조합 등으로 바뀌는 것을 “다세대 변화의 청신호”로 보았다. “과거 다세대주택은 경제 논리를 따른 질 낮은 자재와 여유 공간의 전무함, 국적 불명의 디자인 때문에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그러나 거대 자본에 의해 지어지는 아파트와 달리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다세대주택은 건축의 다양성이나 주민 간 연대를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무수한 가능성을 지닌 주거유형이에요.”

다세대주택이 진짜 K건축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건축가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질과 다양성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당, 옥상, 테라스 등 최소한의 공용 공간이 있고 거주자의 삶을 반영하는 다세대가 만들어진다면 과거 마을 골목에서 만들어졌던 커뮤니티도 어느 정도 회복되지 않을까요.”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건축 개요

●위치: 부산시 북구 화명동 ●용도: 다세대주택 ●대지면적: 208㎡ ●건축면적: 113.23㎡ ●연면적: 337.95㎡ ●규모: 지상 4층 ●높이: 13.1m ●주차: 4대 ●건폐율: 53.48% ●용적률: 162.48%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외부마감: 크라이밋 액티브 페인트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V.P도장 ●설계: 오신욱 라움건축사사무소

인터화이트 평면도. 직사각형으로 지어진 다세대와 ‘ㅅ’자의 단독주택, 두 건물을 잇는 계단실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라움건축 제공
1인터화이트 단면도. 라움건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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