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본회의장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일본 정치에서 단골메뉴인 총리의 의회해산 위협이 또 등장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부정하고 있지만 내년 1월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 실시 가능성이 정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자민당은 중ㆍ참의원 양원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데다 4년 중의원 임기는 2년이나 남아있다. 그런데 왜 1월 해산설이 등장하는 것일까.

일본 정가에서는 흉흉한 이야기를 아베의 임기연장과 연결시키고 있다. 실제 자민당 내에서는 내후년 가을까지인 자민당 총재직을 3년씩 3번까지 하도록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면 2020년 도쿄올림픽도 치르고 헌법개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 보수주류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이 시나리오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제1야당은 여성 스타정치인 렌호(蓮舫)로 선장을 바꿨지만 대만출신이란 핸디캡에 참신성만 강조하다 보니 아베를 상대하긴 무게감이 떨어진다. 계파보스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에 의존하다 보니 실패한 민주당정권 이미지가 복원돼 당세가 더 흔들리는 분위기다.

보통 1월에 열던 전당대회를 내년엔 3월5일로 정해놓은 것도 1월로 염두에 둔 중의원 해산을 대비했다고 의심받고 있다. 내년 5월까지 선거구 6개를 줄이라는 대법원 결정에 따라 조기총선이 불가피해진 측면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에 따르면 아베의 통치노하우는 다름아닌 ‘타이밍의 정치’인 셈이다.

일본의 내각제 시스템은 이처럼 역동적이다. 일본 국회 역시 한국처럼 변화무쌍하다. 지난 주엔 아베 총리가 고생하는 자위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하자고 유도하자 여당 의원들이 일제히 기립해 박수치는 풍경이 벌어졌다. 야당이 즉각 “국회 품위를 망친 최악의 퍼포먼스”라고 문제제기하자, “박수든 야유든 영국에선 의회의 꽃”이라고 받아치는 등 시시콜콜한 기싸움이 내내 벌어졌다. 국회 개회식 때 앉아있는 일왕도 기능이 없지 않다.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지만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보면 존재자체가 정치권내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 지켜보는 내각제는 의외로 정교하게 운영되고 있다. 흔히 한국 교과서에 나오던 ‘대통령제는 정치적으로 안정돼 강력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거나 ‘내각제는 정국불안이 심하다’는 류의 얘기가 적어도 아베 정권에선 반대임을 체감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때 국회 다수당, 지방권력, 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제왕적 대통령’이었지만 그가 가장 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알려진 한반도운하나 세종시수정안 관철에 실패했다. 정작 내각제에선 행정부와 입법부가 한 몸이니 정치적 안정이나 강력한 정책추진에 더 용이하다.

무엇보다 책임정치란 측면에서 대통령제 쪽이 취약해 보인다. 일본에선 언론사의 내각 지지율조사가 매우 큰 뉴스로 취급된다. 민심과 상관없이 5년간 임기가 보장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30%대로 지지도가 떨어지면 바로 비상시국에 들어간다. 30%초반이나 20%대 진입하는 순간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으로 이어지는 게 순리다.

아마추어 정치인이나 신비로운 이미지로 덧씌워진 인물에게 5년의 역사를 맡기는 모험도 내각제에선 불가능하다. 초선의원 정도는 발언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다. 소속 상임위에서 전공분야 공부하기도 바쁘다. 오랜 검증을 거치다 보니 야당도 새도우캐비닛(예비내각)에 들면 정무든 정책현안이든 전문가가 수두룩하다.

일본 내각제가 유독 달리 보이는 것은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때문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물러나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의 하나다.” 소위 한국의 집권여당 대표라는 인사의 말이다. 단식이 끝나고 국정감사는 재개됐지만 이 말속에 우리 정치의 본질과 수준이 그대로 담겨있다. 무책임의 경쟁적 도발이 끊이지 않는 구조다. 그런데 책임정치에 더 민감한 내각제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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