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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NOW] 김영란법에 묶인 자유

입력
2016.10.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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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비싼 밥을 먹을 수 없게 돼서 징징거리는 것이 아니다. 부조금 못 받아서 돌잔치 못 연다고 떼쓰는 것도 아니다. 남의 돈으로 밥 먹던 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혜였고, 남의 돈으로 내 잔치 크게 하겠다는 경조사 부조금은 아예 사라지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의 진짜 문제점을 가리는 그런 기사는 인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점은 양심의 자유 침해와 사전 검열이다.

청탁금지법을 적용받는 기관은 소속된 임직원에게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19조에 “공공기관의 장은 공직자 등에게 연 1회 이상 교육을 실시하여야 하고, 법령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매년’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교육을 받는 의무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서약서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

권익위원회가 발간한 ‘청탁금지법 매뉴얼’에 수록된 ‘서약서 양식’에 보면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에 따라 어떠한 처벌도 감수할 것을 서약합니다”라고 돼 있다. 이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관련 법규에 따라 받는 과태료나 징역, 벌금 등 법적인 처벌은 굳이 서약하지 않아도 받을 수밖에 없어서 불필요한 조항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 서약서를 회사 측이 받는 것으로 돼 있으므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한다’는 부분이 자칫 법적인 처벌이 아닌 회사가 임의로 내린 징계도 다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마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려진 징계나 과도한 징계도 다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우려가 생긴다. 심지어 “경고부터 해고까지 받을 수 있다” 등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해 서약서를 받은 회사도 있다고 한다.

외부 강의나 행사 참여, 언론 기고 등을 모두 회사에 사전 신고해야 한다는 10조도 문제다. 지나치게 많은 강연료나 원고료를 주어 사실상 뇌물을 주는 경우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런 목적을 위해 제약되는 개인의 자유가 너무 크다. 몇 달 전 KBS 소속 기자가 기자협회보에 과거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수석의 보도 개입과 관련해 비판하는 기고를 했는데, KBS는 이 기자를 제주로 발령 냈다. 이제 이런 회사는 미디어 관련지에 기고하겠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쓰지 못하게 압력을 가할지도 모른다.

물론 업무시간 내에 이뤄지는 외부강연이나 회의 참석은 내규상 애초부터 회사의 허락을 구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 이외 시간이나 주말에 이뤄지는 강연을 하거나 업무 이외 시간에 외부 원고를 쓰더라도 모두 회사의 사전 검열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외부 강연과 기고가 많은 대학교수들도 사전 보고 의무로 자유를 침해 받고 있다.

기자는 청탁금지법의 취지에 동의한다는 글을 몇 번 쓴 적 있다. 내수 경기 위축은 분명 걱정되지만 중장기적으로 부패 문화가 근절된다면 오히려 경제가 한 단계 발전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한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 제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이냐가 문제다. 인권 침해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여서는 안 된다. 애초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이른 시일 내에 수정, 개정할 필요가 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서 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다. 홍인기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서 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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