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천일야화] 24.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바이칼 호수 주변에 무지개가 크게 걸려 있다.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먼저 만난 풍경은 강남의 운전학원 버스였다. 웬만하면 글자를 지우고 새로 페인트 칠해서 달릴 법도 한데 아예 그럴 의도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외국 글자가 적힌 차량을 있는 그대로 모는 것이 멋스럽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해외에서 한글을 만나는 느낌은 반가움이 8할이고 당혹스러움이 2할이다. 나라 힘이 커졌다는 물증이라서 뿌듯하다가도, 족보 없는 번역을 만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출구(出口)를 ‘내보내기’라고 번역해서 간판을 달아놓는 식이다.

2015년 7월3일 새벽 0시를 갓 넘겨서 어둠이 깔린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숙소로 이동해서 잠들기 바빴다.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 도시는 가장 시베리아다웠다.

이르쿠츠크의 유례는 400년을 갓 넘겼다. 1615년 시베리아 정복에 나섰던 카자크 부대가 앙가라강 하류에 야영지를 세운 곳이 1686년 도시로 승격됐다. 황량한 시베리아의 군사도시로 남아있던 이르쿠츠크는 19세기 들어 혁명과 낭만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1825년 12월 유럽에서 자유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던 청년장교들이 짜르에 맞서 근대적 혁명을 꾀했다. 이 혁명이 성공했다면 ‘데카브리스트의 혁명’이라고 후세에 알려졌겠지만 민중을 빠트린 ‘그들만의 혁명’은 금방 제압됐다. ‘데카브리’는 러시아말로 12월을 뜻한다. 결국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평가절하된 쿠데타 재판에서 5명이 사형, 120여명이 시베리아 유형길에 올랐다.

러시아는 지금도 이혼률이 세계 톱 랭크다. 성 문화도 개방적이지만 결혼 10쌍 중 6, 7쌍이 헤어질 정도로 이별도 쿨하다. 그런 러시아에서 남편이 역모죄에 연루됐다고 가정해보자. 사형은 면했지만 당시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수 만리 떨어진 시베리아로 쫒겨가야 하는 것이다. 비행기로도 6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인데다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의 땅이기도 하다. 한양에서 완도나 거제도 정도로 쫒겨가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혼도장 딱 찍으면 여생이 편했다. 대역죄인 남편과 헤어진다고 비난할 세상도 아니었다. 밥 먹듯 이혼하는 동네에서 고무신 갈아신으면 귀족으로 평생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여인네 대부분이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왔다. 학식과 교양, 무엇보다 고난에 굴하지 않는 사랑으로 불타 올랐던 그들은 바로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의 새 주인이었다.

바이칼 호수와 앙가라강이 만나는 곳에 체르스키 전망대가 있다. 주변은 오색 줄로 덮힌 샤먼의 세계다.

새벽같이 이르쿠츠크를 나서서 1박2일로 알혼섬을 다녀오고도 바이칼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바이칼의 무게가 더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이칼호에서 앙가라강이 흘러나오는 지점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보니 벌써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다. 바이칼호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체르스키 전망대였다. 오색줄을 감은 나무들이 샤마니즘의 세계로 인도한다. 세계인들이 너나없이 전망대 바위에서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다시 호수로 나선다. 배 위에서 바이칼의 물고기 오믈을 안주로 보드카를 마셔보니 호수가 바다처럼 커 보인다. 간이 부은 건지 몰라도 바이칼이 넓기는 넓었다.

러시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보드카 말고도 하나 있다. 바로 자작나무다. 바이칼과 이르쿠츠크 일대를 뒤덮고 있는 자작나무는 줄기의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명함도 만들고, 사랑의 글귀도 남긴다. 껍질에는 기름기가 많아 오랫동안 썩지 않는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華)로 쓴다. 결혼식을 화혼이라고 하고, ‘화촉을 밝힌다’고도 한다. 옛날에 촛불이 없어서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자작나무는 단단하고 치밀한데다 벌레를 먹거나 뒤틀리지 않기 때문에 껍질은 불쏘시개로, 목재는 건물과 다리, 조각재로 사용됐다.

이르쿠츠크 길가 숲속에 자작나무가 한껏 자라고 있다.

19세기 카자크의 목조 건축물을 재현한 탈지 야외박물관을 가보니 모든 것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정교회 건물, 집, 창고, 목책, 망루, 심지어 나무로 만들어진 맷돌도 있었다. 누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기념품 가게인데 첫 눈에 자작나무 껍질을 입힌 라이터가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금연, 해외서는 흡연을 생활화했지만 공항에서 라이터를 빼앗겨 버린 터라 담배 태울 때마다 아쉬운 소리를 하던 때였다. 150루블(약 3,000원)이 아까울 턱이 없었다. 그런데 라이터를 뜻하는 러시아말이 묘했다. 19금 용어라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바이칼 호수 인근 숲속에 반야 체험을 할 수 있는 통나무집이 여럿 있다.

국보 207호 천마도(天馬圖)는 1973년 8월20일 경주 황남동 고분 155호분에서 발굴됐다.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천마도가 됐고, 155호 고분은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말 탄 사람의 다리에 진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말다래다. 천마도는 당시 발굴된 1만1,500여 점의 유물 중 단연 으뜸이었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 6㎜인 천마도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재질이 바로 자작나무 껍질이라는 것이다. 자작나무는 백두산 원시림이나 시베리아에서 자라는 나무로 남쪽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종이었다. 5∼6세기 고구려로부터 전래됐다고 하지만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와 북유럽에서는 자작나무 가지를 다발로 묶어 사우나를 할 때 온 몸을 두드린다. 겨울철 반야 체험에 나서면 사우나에서 뜨거운 김을 새다 바깥 눈밭을 구른다. 그리곤 다시 사우나에 들어가 자작나무 가지로 등을 찰싹 때린다. 애석하게도 7월의 이르쿠츠크에는 사우나는 있어도 눈은 없었다. 눈 덮힌 시베리아와 꽁꽁 얼은 바이칼이 날 유혹한다.

jhjun@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