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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도인들 정체성 논쟁, 힘 키우는 힌두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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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도인들 정체성 논쟁, 힘 키우는 힌두뜨바

입력
2016.10.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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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차별ㆍ카스트는 힌두교 탓”

캘리포니아주 교과서 개정에

“이슬람ㆍ영국 지배가 원인” 반격

美 주류문화의 차별에 대항 꿈꿔

폭력 대신 힌두문화 우수성 설파

활발한 조직화로 교민사회 장악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인도교민사회는 올해 봄 교과서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6년마다 개정되는 교과서의 새로운 개정초안이 공개되자 특히 6-7학년 역사교과서의 인도 역사와 힌두이즘(Hinduism)에 관한 내용을 둘러싸고 수많은 수정제안과 청원이 주 교육위원회로 제출된 것이다. 논쟁의 주요 쟁점은 첫째, 미국이 인도(India)라는 지역 명칭을 남아시아(South Asia)로 바꾸는 것의 정당성 문제. 둘째, 아브라함 전통에 속한 종교들에 대한 기술과 비교해 힌두이즘을 다룬 부분에 유독 부정적인 내용이 많은 것의 공평성 문제. 셋째, 여성 차별 등 카스트 제도의 불평등이 힌두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기술의 정당성 문제 등이었다.

미국의 인도교민 중 절반 가까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교과서 개정은 인도교민사회의 다음 세대가 인도와 힌두이즘에 대해 갖게 되는 역사관과 직결된다. 아울러 그 밑바탕에는 ‘미국으로 이주한 인도 교민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깔려 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인도교민사회는 이미 지난 2005년과 2006년 교과서 개정 때 힌두뜨바(Hindutvaㆍ힌두 근본주의) 진영과 진보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이번 사태는 그 연장전 혹은 2차전인 셈이다.

불붙은 미국 내 인도 정체성 논쟁

미국 정부는 1980년대부터 다문화주의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왔다. 이 정책 아래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 종교, 역사를 지닌 이민자 집단은 미국사회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정체성과 특성을 유지하며 미국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바로 미국이 내세우는 ‘문화적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민자 집단이‘소수민족(ethnic minority)’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집단을 대표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집단과 뚜렷이 구분되는 정체성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힌두와 무슬림, 기독교와 시크교, 불교도 등등이 섞여 있고 출신지역에 따라 수십 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문화적 관습과 역사적 경험도 제각각인 수백만 인도교민사회를 과연 무엇으로 묶어낼 것인가? 캘리포니아 교과서 논쟁은 이처럼 미국 인도교민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보다 큰 전쟁터에서 벌어진 중요한 전투이자 주도권 다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정체성 전쟁에서 힌두뜨바 진영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인도문화의 뿌리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생한 베다문화이며, 이것이 갠지스강 유역과 남인도로 퍼져 꽃 피운 것이 힌두이즘다. 둘째, 카스트 불평등이나 여성 차별을 비롯해 오늘날 힌두이즘의 부정적 모습으로 꼽히는 온갖 관습들은 중세 이슬람의 침략과 지배, 그리고 18세기부터 200년 동안 지속된 영국의 식민통치 때문이다. 천여 년에 걸친 외세의 부정적인 영향을 떨쳐내고 힌두이즘의 영원한 가르침(sanatana dharma)을 되살려 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단결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힌두의 가장 성스러운 의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주목되는 점은, 학계의 통설과 달리 베다문화가 중앙아시아 일대에 거주하던 아리안족의 이동에 의해 외부에서 인도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생한 인도의 토착문화라는 주장이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도문화의 뿌리이자 본 모습이므로 인도문화는 바로 힌두이즘, 힌두문화라는 주장이다. ‘힌두이즘’에는 베다문화뿐 아니라 불교, 자이나교, 박티신앙, 시크교 등등 역사적으로 인도에서 생겨난 온갖 종교와 전통에다가 인도 각지의 다양한 부족들의 신앙과 문화, 관습들도 모두 포함되는데, 그 핵심은 바로 브라만 중심의 베다문화로 간주된다. 반면 기독교와 이슬람은 비록 인도에서 천 년 이상 유지됐지만, 인도 바깥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남의 종교이자 남의 문화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힌두뜨바의 시각으로 교과서 논쟁의 쟁점들을 살펴본다면, 국가로서의 인도는 100년이 채 안 되었지만 문화로서의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전통을 이어왔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와 유럽-미국중심의 관점에서 강자의 논리에 따라 갖다 붙인 ‘남아시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이름이다. 또한 아브라함 전통의 종교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그보다 더 오랜 전통과 찬란한 문화를 가진 힌두이즘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미국사회의 백인-기독교우월주의가 드러난 문화제국주의적 폭력이다. 따라서, 진정한 힌두라면 이러한 부당한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하나로 뭉쳐서 투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힌두뚜뜨바 진영이 주도권 장악

힌두가 절대다수인 인도에서는 힌두뜨바가 선전하는 역사적 부당함을 바로 잡기 위해 무슬림에 대한 집단폭력과 학살, 기독교도에 대한 테러 등의 방법을 거리낌 없이 동원할 수 있었지만, 힌두가 소수집단에 불과한 미국에서는 그런 직접적인 폭력행사가 불가능하다. 또한 미국 대통령이 ‘모범적 소수집단(model minority)’이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인도교민사회가 교육수준과 직업, 소득, 가족과 공동체관계의 안정성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이민자 집단에 비해 앞서 있지만, 이들이 미국사회에서 갈색피부를 가진 소수집단으로서 경험하는 차별과 소외감은 매우 강하다.

미국적 환경에서 정체성 전쟁에 임하는 힌두뜨바의 기본전략은 한편으로는 힌두문화의 우수성 때문에 ‘모범적 소수집단’으로 올라서는 것이 가능했다고 강조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주류 백인-기독교문화의 차별과 편견에 대항해서 모든 힌두인들이 조직화를 통해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핵심 힌두뜨바 조직과 수많은 힌두 단체들의 온라인 사이트를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미국사회에서 힌두로서 겪은 차별과 편견의 경험을 공유하는 토론방이 마련돼 있었다. 힌두문화와 미국문화 양쪽을 경험하며 자란 이민 2세대들이 성장과정에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방황, 어떤 계기로 힌두이즘을 접하고 점점 깊이 알게 되면서 느낀 문화적 자각과 자부심, 그 결과 힌두뜨바 관련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확고해진 힌두로서의 자존감과 사명감 등은 이런 토론방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힌두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미국 힌두뜨바의 노선과 전략은, 이처럼 인도교민들이 미국사회에서 엘리트이자 동시에 소수집단으로서 겪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두 차례에 걸친 교과서 논쟁에서는 두 진영 간의 승패가 명확히 갈리지 않고 절충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시야를 넓혀 보면 현재 어느 진영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지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힌두뜨바진영은 이미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조직화를 시작해 미국 세계힌두협의회(VHPA, 1970년), 힌두자원봉사단(HSS, 1977년), 힌두학생협의회(Hindu Student Council, 1990년) 등 핵심 조직과 수백 개의 연대 조직들을 갖췄으며, 이 밖에도 직간접적으로 힌두뜨바에 동조하는 인피니티재단(Infinity Foundation, 1995년), 베다재단(Vedic Foundation, 2000년), 힌두아메리칸재단(HAF, 2004년) 등 수많은 힌두 단체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미국 전역과 인도, 더 나아가 전 세계 인도교민사회를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즉 힌두뜨바 이념과 노선은 조직화라는 하드웨어와 힌두문화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인도교민사회에서 수십 년 간 꾸준히 지지기반을 확대해왔으며, 그 결과 조직화된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제치고 미국사회에서 힌두이즘을 대변하는 얼굴로 떠오른 것이 지금까지 진행된 정체성 전쟁의 현황이다.

소프트 힌두뜨바(Soft Hindutva)란

힌두뜨바(Hindunessㆍ힌두성)는 인도 힌두근본주의 집단인 국민자원봉사단(RSS), 세계힌두협의회(VHP), 인도국민당(BJP)의 핵심 이념으로, 인도를 힌두이즘의 가치를 구현하는 종교적인 국가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인도에서 힌두뜨바는 무슬림, 기독교도, 하층카스트 등에 대한 폭력적인 정치운동으로 나타나지만, 미국에서는 폭력성을 감추고 힌두문화와 힌두이즘을 널리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문화민족주의적 성격을 띤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힌두뜨바 진영은 인도문화의 본질은 힌두문화이고 인도교민사회의 핵심적인 정체성은 힌두라는 점을 미국의 다문화주의 틀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프트 힌두뜨바는 비록 겉모습을 ‘소프트’하게 바꿨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힌두뜨바’라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이름이다.

아브라함 전통(Abrahamic traditions)이란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미국사회에서 이슬람 혐오 감정이 강해지는 경향을 경계해서 보급된 용어로서, 기존 ‘유대-기독교(Judeo-Christianity) 전통’의 범위를 넓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등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 종교이자 문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의 힌두뜨바 조직들은 이런 용어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이슬람의 공식적인 입지가 커질 뿐 아니라, 아브라함 전통에 속하지 않는 힌두이즘이 소외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정채성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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