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관중으로 가득찬 전주월드컵경기장. 프로축구연맹 제공

사과하는데도 타이밍과 기술이 있다.

▲부정적인 논란이 발생한 초기일수록 좋다 ▲절대로 변명하지 말라 ▲쿨(Cool)하게 인정하라 ▲처벌을 달게 받고 자숙할 것임을 밝혀라 등이다.

그런 점에서 K리그 클래식 ‘1강’ 전북 현대는 사과의 타이밍도 놓쳤고 기술도 부족한 것 같다.

전북 스카우터가 2013년에 5차례에 걸쳐 두 명의 심판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게 지난 5월이다. 4개월이 지나 지난 28일 법정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 전북은 사건발생 직후 ‘스카우터 개인이 벌인 일이다’고 발표해 ‘꼬리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며칠 뒤 최강희 감독과 이철근 단장이 기자회견에 참석해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아직 책임진 사람은 없다. 스카우터 개인의 일탈이면 구단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으므로 당장 해고하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해야 정상인데 해당 스카우터는 여전히 직무정지 상태다. K리그 고위 관계자는 “제대로 된 사과도 없고 재발방지 대책도 전무하고 구단은 무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니 답답하다”고 혀를 찼다.

요즘 전북 관계자들의 입에서는 “우리만 했느냐”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고 한다. 다른 구단도 암암리에 심판에게 용돈을 줘 왔다는 뜻인 것 같다. 누구인지 당장 제보 좀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던지. 사실이라면 이 참에 고질적인 병폐를 완전히 뿌리 뽑게 말이다. “뒤집어 까면 프로축구가 다 죽는다”고 손사래 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 기회에 제대로 수술해서 아픈 부위를 말끔히 고쳐야죠. 그래야 6개월 후에는 조금씩 걷고 1년 뒤에는 다시 뛸 수 있지 않나요? 당장 내일 못 걷는 게 두려워 수술을 피하면 평생 절뚝거리란 말입니까? 그게 K리그를 위한 길입니까?”기자에게 열변을 토하던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의 주장에 백번 공감한다.

10년 전 전북은 지방의 그저 그런 이류 클럽이었다. 지금은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고 구단으로 인정 받는다. 이 단장과 최 감독의 공이 크다. 이 단장은 “축구단은 모기업(현대자동차)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현대차의 중국 진출 시기에 맞춰 전북은 “기량이 떨어진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선수들을 외국인 쿼터로 영입했다. 현대차가 브라질에 공장을 짓자 전북은 수 년 전부터 상파울루로 동계 전훈을 가 ‘전도사’를 자처했다. 오랜 비행과 12시간의 시차에 선수들 불만이 컸지만 이 단장은 꿈쩍 안 했다. 이렇게 모기업으로부터 예산을 따왔고 대규모 투자의 토대를 마련했다. 최강희 감독의 별명은 ‘봉동이장’이다. 봉동에 있는 전북 클럽하우스 길목에 삼겹살 집이 하나 있다. 최 감독은 그곳에서 주민들과 가끔 소주잔을 기울인다. 훈련을 보러 오는 학생들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돌아갈 때 손수 차에 태워주기도 한다.

전북 스카우터에게 유죄가 내려진 28일, 전북과 FC서울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을 보기 위해 평일 저녁에 2만 여명이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 애칭)을 찾았다. 전북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지만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고 했다. 축구계에서 전북은 누구나 인정하는 ‘승자’다.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역량이 충분하지 않나.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으려면 팬들을 향한 진솔한 사과가 우선이다. 전북이 지금이라도 ‘리딩구단의 품격’을 보여주길 바란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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