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태어난 둘째 때문에 잠을 잘 못 자고 있다. 아이를 보러 오신 어머니께 아이들은 왜 밤에도 세시간마다 일어나서 먹으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자, 세 시간마다 깨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 치셨다. 나를 키우시던 30여년 전에는 기저귀가 요즘처럼 잘 나오지 않아서 하룻밤 사이에도 아홉 개, 열 개의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이면 밤사이 나온 기저귀를 빨아 말리는 것이 큰일이었는데, 그것도 당시에는 세탁기가 없어 손으로 빨아야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절대로 혼자 다 해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퇴근 후 갓난아이였던 나를 목욕시키고, 낮 동안에 나온 기저귀를 어머니를 대신해 빨래했다. 새벽에도 아이가 깨면 둘째를 임신 중이던 어머니를 대신해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였다. 밤에는 아이 기저귀를 갈고, 낮에는 돈을 벌러 나가던 그때, 아버지 나이는 스물 넷이었다.

‘젊은 아빠’였던 아버지는 언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을까.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아버지가 나를 낳았던 때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자다 말고 일어나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는 일이 성가시고, 목욕시키기는 서툴고, 기저귀 빨래는커녕 기저귀를 마트에서 사 오는 것도 귀찮다. 주말이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고 싶고, 휴가 때면 나 혼자만 집에 남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쉬고만 싶다. 아버지도 당연히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버지께 여쭸다. “언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셨어요.”. 아버지도 다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고 했다. 주말이면 좀 더 자고 싶었고, 집에 있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버지 혼자만의 시간이 없지는 않았단다. 혼자 운전할 때만큼은 ‘아버지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첫차, ‘포니 왜건’을 구입한 후부터 혼자 고속도로를 달리면, 모든 걱정과 의무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운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 그래서 오직 나 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상태였다. 슬프거나 괴로워서가 아니다. 아빠도 아닌, 남편도 아닌, 누구의 아들이거나, 누구의 동료도, 누구의 선배도 아닌 ‘나’ 라는 존재와 문득 대면했기 때문이리라.

휴가(vacation)라는 말은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라틴어 ‘vacatio'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은 단지 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워진 상태는 노동을 포함한 모든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에 ‘vacant’나 ‘vacancy’와 같은 말에는 비어있음, 생각 없이 멍한 상태라는 뜻도 담겨있다. 즉 휴가는 단지 일을 하지 않는 상태인 휴무와는 다르다. 그렇게 보자면 아버지께서 일을 잠시 쉬고 어린 우리와 놀던 때는 휴가라기보다 아마 휴무였을 것이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운전을 하고 있었던 때야말로 아버지의 시간, 아버지의 휴가였다.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으신 아버지께 나는 전화조차도 너무 인색하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다가도, 둘째가 태어나 출산 ‘휴가’를 보내고 있는 아이 엄마가 조용하고, 텅 빈 상태로, 멍하게 있도록 단 한 번도 내버려 둔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 아내의 시간은 언제일까. 내 아내는 언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까. 어쩌면 아내의 시간은 남편인 내가, 나의 시간의 아내가, 아버지의 시간은 아들이 서로의 시간에 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 줄 때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나기 전에 아내가 깊은 심심함에 빠지도록 텅 빈 시간과 장소를 선물해주리라. 그다음 아마 나도 휴무 대신 텅 빈 ‘휴가’를 허락받을 수 있지 않을까.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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