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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조직 수장이 ‘체육대통령’에 도전하는 서글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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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조직 수장이 ‘체육대통령’에 도전하는 서글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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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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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이 지난 23일 공명선거 실천 결의대회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흥, 장정수, 전병관, 장호성.(직함 생략) 대한체육회 제공
대한 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이 지난 23일 공명선거 실천 결의대회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흥, 장정수, 전병관, 장호성.(직함 생략) 대한체육회 제공

내달 5일 열리는 제40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지난 3월 통합한 뒤 선거로 선출되는 첫 통합체육회장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50여 개의 가맹단체 대의원들이 투표권을 행사했지만 이번에는 선수와 지도자, 체육동호인 등 약 1,400여 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회장을 뽑는다. 신임 체육회장은 등록 선수 600만 명을 관리하며 연 4,0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한다. 명실상부 ‘체육대통령’이다. 하지만 출마한 5명의 후보 면면을 보면 오히려 체육회 위상이 추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정수(65) 전 볼리비아 올림픽위원회 스포츠 대사, 이에리사(62) 전 국회의원, 이기흥(61) 전 대한수영연맹 회장, 장호성(61) 단국대 총장, 전병관(61)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교수 중 알만한 인물은 ‘사라예보의 영웅’ 이에리사 전 의원 정도다. 광복 이후 대한체육회장은 신익희, 조병옥, 이기붕, 이철승, 노태우, 정주영 등 정ㆍ재계 거물들이 주로 맡아왔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꼭 체육회를 이끌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무게감이 떨어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 한국일보DB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 한국일보DB

이번 회장 선거는 ‘친문체부’와 ‘반문체부’, 다시 말해 ‘관치 체육’과 ‘체육계의 자율성 확대’의 대결 구도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장호성 총장은 지난 2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어떤 교감도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그가 문체부로부터 낙점 받았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통한다. 문체부 실세 중의 실세와 친분이 깊은 단국대 K교수가 추천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반대로 이기흥 전 회장은 ‘반문체부’의 대표 주자다. 눈길을 끄는 건 두 후보 모두 ‘체육회 자율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이 전 회장은 대한체육회 재정 자립을 첫 번째 기치로 내걸었고 장 총장도 “문체부나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제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체육단체 통합 과정에서 그만큼 체육회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는 의미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앞다퉈 복지 공약을 쏟아낸 건 복지를 말하지 않고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체육계의 가장 큰 화두는 ‘자율성 회복’이다.

2010년 1월부터 6년 간 수영연맹을 이끌었던 이기흥 전 회장은 지난 3월 사임했다. 수영연맹 전ㆍ현직 임원이 대표 선수 선발을 둘러싼 금품 거래와 공금 횡령으로 대거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 문체부 입김이 작용한 표적수사라는 말이 파다했지만 백일하에 드러난 수영연맹의 비리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문체부가 스포츠 4대악 등 스포츠 비리를 유형별로 담아 발간한 ‘스포츠 비리 사례집’을 보면 조직 사유화가 205건(35.5%)으로 가장 많은데 대표 사례가 수영연맹이다. 수영연맹 임원들은 10년 넘게 간부로 재직하며 조직을 완전히 장악했다. 임원 선임은 물론 국가대표 선발을 대가로도 뒷돈을 받았다. 허위 훈련 계획서를 작성해 공금을 횡령하고 올림픽공원 내 시설을 국가대표 선수가 사용한다고 속여 공문을 발송해 특정 임원이 열고 있는 클럽회원에게 사용하게 했다. 일부 선수들이 여자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영구제명을 받았는데 얼마 후 풀어줬다. 내부 통제 및 감시 시스템은 전혀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사회나 감사도 있으나 마나 였다. 한 체육인은 “수영연맹은 마피아와 다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전 회장은 직접 비리에 연루되진 않았지만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비리의 온상이었던 조직을 6년이나 이끈 그가 당당히 체육회장에 도전할 수 있는 현실을 체육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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