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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외국인 대통령 영입론

입력
2016.09.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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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제(客帝)’라는 말이 있다. 객이면서 일국의 군주가 된 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근대 중국이 배출한 큰 인물 장빙린(章炳麟 호 太炎)이 쓴 표현으로, 그는 이 말로 청대 만주족 황제처럼 중원을 차지한 이민족 왕조의 군주를 가리켰다.

이는 멋대로 남의 강토를 차지하고 다스리던 과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당연히 오늘날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외국인 대통령 영입’은 어떠한가. 우린 지난 1980년대부터 외국에서 유능한 인재를 활발히 영입해왔다. 프로 스포츠 세계의 얘기다. 외국의 좋은 선수와 지도자 확보에 사활을 걸기도 했다. 이유는, 당장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함이고, 길게는 세계 일류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외국 정치인을 스카우트해오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태세와 역량은, 비유컨대 프로 축구계의 프리미어리그 급에 근접했건만 정치인들의 국정운영은 도무지 프로답지 않으니 말이다. 마침 내년엔 대선이 있으니, 각 당에서 외국의 유능한 정치가를 영입하여 우리 정계의 수준 제고를 꾀하는 건 어떨까. 풍자조차 되지 못하는, 객쩍기만 한 얘기지만 말이다.

장빙린이 객제를 운운함도 외국에서 대통령을 모셔오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는 새로이 건설해갈 근대 중국의 정체로 총통에게 권한이 집중된 ‘총통 중심적’ 공화제를 제시했다.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전환기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 탓에 망국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가를 한시바삐 서구 근대식으로 개조하여 부국강병을 일궈내야 했다. 게다가 중국은 무척 넓고 인구도 많으며, 종족도 다양했다. 이래저래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의 근대기획 성공 여부는 총통, 우리로 치면 대통령에 달려 있게 됐다. 아무리 직선 총통이라 해도 함량 미달이면 중국에는 미래가 없게 된다. 총통 자리에는 그런 ‘가짜 총통’이 아닌 참된 총통이 있어야 했다. 그가 삼권분립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교육권의 독립을 포함한 ‘사권분립’을 주창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가령 총통과 교육의 장은 서로에 대한 ‘적체(敵體)’, 곧 ‘적대적 관계에 놓인 기관’이어야 한다. 그래야 학술의 견지에서 총통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수행하여 참된 총통답게 국정을 운영케 한다는 것이다. 겸하여 현재 권력이 미래를 장악하는 일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는 윤리적 차원에서 총통 후보자 자격을 엄격하게 규정하였다. 가짜 총통의 출현을 막으려면 제도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그렇다. 역사가 웅변해주듯, 선한 제도가 항상 선한 결과를 자동으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경우 사람이 늘 관건이었다. 총통 후보자는 “학식으로 명망 있는 자로 그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왔다. 그의 사유에서 ‘학식 있음’은 진리를 자기 영혼에 품고 있음을 의미하고, ‘명망 있음’은 그러한 학식을 사회적 실천을 통해 발휘하여 대중의 검증을 받았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대통령 후보론이다. 그러한 학식을 쌓음과 동시에 정치 역량도 갖춰야 하니, 요즘 우리나라 같은 곳에선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기에 그렇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대통령 영입론이 뇌리에서 가시질 않는다. 대통령 선출이 무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같은 비중이 결코 아님에도, 차라리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마침 나라 밖에서 국내 정치와 꽤 먼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운위되고도 있다. 국내 정치판에 대한 염증이 그리 발현된 듯싶다. 그렇다고 해도 검증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미 경험했듯이, 프로 스포츠계의 ‘먹튀’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가는 나라 등골이 제대로 휘고 만다. 그래서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이나 역량을 갖췄냐는 반드시 결과로 드러난 그의 공적을 토대로 가늠되어야 한다. 그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가, 아버지가 누구인가와 같은 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 자리는 잠재력을 끌어내는 곳이 아니라, 준비된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해야 하는 자리기에 그렇다. 대통령이 되어 잠재력을 끌어내는 동안 시민은 등 터질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왕 나라 밖에서 영입하려면 대통령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충분히 검증된 인물을 스카우트하는 건 어떨까. 세계 유일 강대국 미국을 지난 8년 가까이 큰 허물없이 이끈 오바마 대통령은 어떠한가. 적어도 빼어난 소통능력을 보여주며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물리학 박사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또 어떤가. 경제 위기 속에서도 나라를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켰으니 말이다.

참,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고 해도 우리 정치인의 해외 진출은 절대 도모하지 말자. 아무리 밉고 골탕 먹이고 싶은 나라가 있어도, 사람이면서 그런 일을 하면 못 쓰는 법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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