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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최순실 게이트’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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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최순실 게이트’의 그림자

입력
2016.09.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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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배신 트라우마’로 의리 집착

문고리 3인방 이어 ‘비선 실세’ 의혹 불러

비상시국 타개하려면 측근부터 정리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6년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뒷편 오른쪽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016년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뒷편 오른쪽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배신 트라우마’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의리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 강하다. 쓰디쓴 배신 경험이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한 측근에 대한 과도한 맹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의리 없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고마운 사람은 나에게 물 한잔 더 준 사람이 아니라 진실한 태도로 일관한 사람이다.” 박 대통령 어록 가운데 ‘진실’‘의리’같은 용어가 유독 많은 걸 보면 그의 인물 쓰는 기준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는 덕목들이 박 대통령에게는 충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가 된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충성도가 입증되지 않으면 중용하지 않는다. 집권 이래 ‘비선 실세’란 말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2014년 정국을 흔든 ‘정윤회 문건 파동’때 박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에게 절대적 신임을 보냈다. 이들의 비대한 권한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여당에도 높았지만 박 대통령은 “의혹을 이유로 내치면 누가 내 옆에서 일하겠느냐”며 감쌌다. 국회 입성 이후 20년 가까이 곁을 지켰던 보좌관들은 대통령에게 가족 이상의 존재였다. 속만 썩이는 동생들보다 맹목적 충성을 보이는 측근들에게 더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 젊었을 적부터 “언니 동생”하며 40년 넘게 지내온 최순실씨에 대한 애정이 어떨지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부모를 잃고 청와대에서 나온 뒤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던 시절, 최씨는 수족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지만 최순실은 오장육부”라는 전직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낭설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 사적인 관계를 넘어 국정에 개입한 흔적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 경질 사태 때 불거졌다. 최씨 딸이 전국승마대회에서 라이벌에 밀려 우승을 놓친 후 문체부가 조사에 나섰고, 결과가 유리하게 나오지 않자 책임자들을 문책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박 대통령이 유진룡 문화부장관을 불러 “나쁜 사람들이라더라”며 경질을 직접 요구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유 장관이 나중에 시인하는 발언을 해 정설로 굳어졌다.

대기업 출연재단인 ‘미르’와 ‘K스포츠’ 설립과 운영에 최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냄새가 더 짙다. 고용창출을 하라 해도 좀처럼 돈을 내놓지 않는 재벌들이 8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선뜻 내놓은 것은 누가 봐도 기이하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수석이 개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씨가 아는 사람들을 내세워 재단을 설립하고, 권력이 뒤에 밀어줬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긍할 만한 의혹 제기를 ‘사회 혼란’으로 몰고 유언비어로 처벌한다는 엄포로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씨가 우병우 민정수석을 천거했다는 조응천 민주당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이 우병우를 왜 내치지 않고 있느냐는 의문도 풀린다. 우 수석은 청와대 들어간 뒤 문고리 3인방과 적극적으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입성 배경에 최씨가 있고 3인방과의 관계도 돈독한 우 수석은 이미 ‘의리 있고 진실한 사람’의 범주에 든 것이다.

측근에 대한 과도한 애착은 국정 운영을 어렵게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적반하장식 대응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의 한 요인이 된 것만 봐도 그렇다.

박 대통령 주변에는 직언을 하는 참모가 없다. 대통령이 소통하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그렇지 못한 다수는 독선과 오만을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포기한다. 박 대통령이 피와 살이 됐다고 밝힌 ‘정관정요’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당 태종이 간언을 마다 않던 대신 위징을 미워해 죽인 뒤 후회하며 한 말이다. “위징이 죽은 후 짐이 허물을 범해도 관료들이 구차하게 순종만 하고 지적하지 않는다. 짐이 깊이 반성할 테니 반드시 직언하고, 혹여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책임을 달게 받도록 하겠다.” 박 대통령 말마따나 ‘비상시국’을 헤쳐 나가려면 비선과 측근부터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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