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좀 봅시다] 2. ‘구르미 그린 달빛’ 여심 저격의 법칙

'응답하라 1988'의 저주는 없었다. 2016 대한민국은 박보검에 푹 빠졌다. '구르미 그린 달빛' 스틸컷. KBS 제공

지치고 힘들었던 월요일과 화요일 밤에 요즘은 구세주 같은 드라마가 등장했다. 장안의 화제라는 그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KBS)’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인기를 끌어올린 주인공은 역시 박보검이다. 드라마 속 박보검은 조선 말 세도정치가 득세하던 시절의 왕세자 이영으로, 우여곡절 끝에 내시로 성별을 속이고 입궁한 홍라온(김유정)과 사랑에 빠졌다.

‘구르미 그린 달빛’과 같은 시간에 SBS에서는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가 방송된다. 아이유, 이준기, 강하늘, 엑소의 백현 등등 초호화 캐스팅에 중국 히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거라서 시작 전부터 화제성이 대단했다.

그런데 ‘월화의 빅매치’는 아직까지 시청률 면에선 박보검의 완승이다. 드라마 초반부에는 ‘달의 연인’ 시청률과 평가가 참패에 가까운 성적이었지만 그나마 최근 들어 이준기의 뒷심이 나오는 듯한 모양새다.

스토리라인으로 따지자면, 양쪽 다 왕자가 캔디형 여주인공과 연애하는 똑 같은 이야기다. 역사적 배경보다는 연애담 위주라 전체적인 뼈대와 논리적 구성이 엉성하고, 설정이며 대사가 유치하기는 양쪽 드라마가 난형난제다. (솔직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좀 더 유치하다)

그런데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구르미 그린 달빛’을 선택한 것일까. 요즘 채널을 돌려가며 양쪽 드라마를 모두 보고 있는 시청자로서 매우 주관적인 분석을 해 봤다. 결론은, 2016년은 ‘착한 남자’와 ‘단순한 스토리라인’이 더 잘 통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영(박보검)과 왕소(이준기)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박보검은 생김새부터 착하고 여린 소년 같은 이미지고, 이준기는 강렬한 눈빛과 얼굴의 고운 선이 대비되는 가운데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매력이다.

박보검은 극중에서 ‘악역’ 느낌이 물씬 나는 영의정과 맞서고 있다. 박보검이 ‘정의롭지만 힘은 다소 부족한 캐릭터’라면, 이준기는 향후 피바람을 몰고 오는 잔인한 군주가 될 운명을 지니고 있다. 악역과 히어로의 묘한 경계선상에 존재한다. 캐릭터의 매력으로 따지면 이준기 쪽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참 이상하게도 요즘은 ‘나쁜 남자’가 안 먹힌다.

최근 또 다른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KBS)’에서 안하무인 나쁜 남자 캐릭터로 나왔던 김우빈도 그랬다. 똑 같은 김우빈인데, 그 드라마 속 김우빈이 예전 ‘상속자들’ 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게 우연은 아니었을 테다.

양쪽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가 또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사랑의 작대기’가 전혀 복잡하지 않다. 남녀 주인공이 오해하고 엇갈리는 ‘밀당’도 거의 없다. 오로지 직진이다.

비슷한 소재의 ‘남장 여자’가 등장했던 ‘커피프린스 1호점(2007년, MBC)’을 생각해 보자. 최한결(공유)은 고은찬(윤은혜)이 남자인데 자꾸 좋아지는 ‘밀당’ 과정이 나오고, 결국 고민 끝에 극적으로 고백하고, 그런데 그 직후 고은찬이 여자라는 걸 알게 되자 불 같이 화를 내며 떠났다가 다시 이어진다. 이 과정이 거의 드라마 후반부까지다. 반면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속전속결이다. 박보검이 무슨 고민을 했는지, 홍라온이 여자인줄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자세한 과정은 죄다 생략이다.

라온(김유정)에 대한 이영(박보검)의 사랑은 거의 '직진'이다. 밀당이 없다. KBS 제공

이렇게 되니까 남녀 주인공 사이의 설정과 대사는 더욱 오글거린다. “불허한다”는 그렇다 쳐도, “너는 내 약과가 아니더냐” 같은 대사는 너무 나갔다.

반면 ‘달의 연인’은 감정선이 복잡하다. 해수(아이유)가 마음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왕욱(강하늘)이지만 자꾸 엮이는 건 왕소(이준기)다. 어떻게 보면 고려시대의 ‘어장관리’ 같은 상황이 자꾸 이어지고, 황자가 너무 많다 보니(극중엔 14황자까지 나온다) 아이유를 향한 ‘사랑의 작대기’가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다.

2016년 안방극장의 여심 저격 코드에선 이런 변화가 감지된다. 올 봄 ‘태양의 후예’에 등장했던 유시진 대위(송중기)도 그랬고, 조선의 세자저하 박보검도 그렇다. 시청자의 감정과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그러면서 늘 따뜻하고, 오글거리지만 아주 노골적으로 마음을 표현해 준다.

어쩌면 요즘 우리는 가슴을 졸이는 남녀 주인공의 엇갈림을 보는 것도, 섹시한 나쁜 남자가 여주인공 애 태우는 걸 보는 것도 다 피곤한 건지 모르겠다. 그냥 피곤한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찌들고 지쳐서 밤에 튼 TV 속에선 좀 비현실적일 정도로 따뜻한 사람을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박보검이 ‘너만 바라 볼게’ ‘내가 지켜 줄게’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며 달려오는 그 느낌, 세상만사 지치고 힘들지만 나만 믿어 보라는, 내게 안겨 쉬라는 그 따뜻한 오글거림, 그런 것에 2016년 시청자들이 흔들리는 게 아닐까.

그리고 놀랍게도 요즘 내 주변에선 이토록 오글거리고 유치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은근히 재미있더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아저씨들이 꽤 있다. 우리 모두는 일상생활에서 아드레날린을, 테스토스테론을 너무 많이 소모하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아저씨들도, 아줌마들도, 그리고 청춘남녀들도 모두 외롭고 지치고 힘들어서 박보검이 좋아지는가 보다. 그런가 보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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