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이몽]<4>경기 성남시 '빛우물집'

성남시 운중동 ‘빛우물집’.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아들 내외가 중정을 사이에 두고 선택적 소통을 나눈다. 남궁선 제공

과거 마을마다 있던 우물의 역할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시켜 맑은 물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첨성대 상단부의 우물 모양 정자석(井字石)도 지상과 천상을 연결해 하늘로부터 천기를 읽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설이 있다. 경기 성남시 운중동에 들어선 2층주택 ‘빛우물집’에는 빛을 담는 우물이 있다. 케이크를 만드는 파티쉐 엄마, 빵과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아들 내외와 다섯 살 난 딸, 그리고 대형 반려견 한 마리가 이 빛우물을 사이에 두고 함께 산다. 하늘에서 길어온 빛과 지상에서 불러들인 바람이 고이는 우물은 거주자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광장이기도 하다.

‘중정’ 빛, 바람, 소통 고이는 우물

어머니와 아들이 판교에 카페를 연 것은 6년 전. 위치는 성남시 운중동의 운중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일명 ‘서판교 카페거리’로, 주민뿐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카페는 이 가족에게 특별한 연결고리다. 15년 전부터 다른 지역에서 카페를 운영해오던 어머니에게 아들이 커피와 빵 만드는 법을 배워 합류했고 여기에 손님으로 찾아온 아내와 결혼해 현재의 가족이 탄생했다.

아들 내외는 카페 2층에서, 어머니는 인근 아파트에서 따로 살던 중 아이가 태어났고 두 집의 왕래는 더욱 잦아졌다. “이럴 바엔 그냥 같이 살까란 얘기가 나왔어요.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어머니가 돌봐주시면 감사한 일이니까요. 대신 독립성을 지키며 살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속옷만 입고 돌아다닐 관계는 아니잖아요.”

집 중앙을 차지하는 중정. 채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이 중정은 윗층과 아래층이 느슨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남궁선 제공
1층 바깥에서 본 중정. 접이식 문을 열면 외부 마당으로 확대되고 문을 닫으면 가족끼리 식사를 할 수 있는 반야외공간이 된다. 남궁선 제공

두 가구는 절반씩 비용을 부담해 카페에서 차로 5분 거리의 한적한 주택가에 224.40㎡(68평) 크기의 땅을 샀다. 건축면적은 111.91㎡(34평). 땅콩집처럼 둘로 나눠 짓기에도 좋은 크기였지만 “답답한 건 싫다”는 건축주 취향에 따라 1층과 2층으로 가구를 나누기로 했다. 설계를 맡은 조인호 건축가(애스크건축)가 땅 위치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집이 어둡겠다”였다. “채광이나 조망에 유리한 위치는 아니었어요. 남쪽으로 3층 높이 주택이 가까이 붙어 있는 데다가 북쪽은 사람과 차가 다니는 도로라, 빛을 어떻게 끌어 들일 것인가가 제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마침 건축주의 요구 중에 마당이 있었다. 어린이만한 대형견 사모예드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가끔 가족들이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야외 공간을 원했다. 건축가가 떠올린 건 중정이다. 중정은 집 내부에 조성하는 마당으로, 밖으로 개방된 마당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형태다. 이 집에선 외부공간이자 부족한 채광을 보강하는 중요한 장치로 쓰였다.

건축가는 남쪽에 사각형의 중정을 만든 뒤 삼면 벽을 둘러 큰 창을 냈다. 창이 워낙 커서 내부에서 보면 거대한 유리관이 집 속에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을 통해 사계절 내내 빛이 떨어져 들어온다. 하얗게 마감한 벽이 햇볕을 반사해 채광은 극대화된다. “빛을 확보하려면 이웃집과 거리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럼 집 면적이 줄죠. 그러니까 중정 부분만 뒤로 물러난 겁니다. 주택밀집지라 큰 창 내기가 힘든데 중정 쪽에 창을 크게 내서 집 전체에 맞바람이 통하게 했습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어 딱히 조망이랄 게 없는 이 집에 중정은 유일한 풍경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이웃집과 면한 남쪽 중정의 1층엔 접이식문을 달고, 2층엔 벌집구조로 벽돌을 쌓았다. 접이식문을 열면 1층 중정은 외부가 된다. 구멍이 뚫린 회색 벽은 바깥 시선을 차단하고 빛과 바람을 들이는 한편, 실내에 있는 사람들에겐 대형 걸개그림처럼 눈을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

2층 거실. 다락 때문에 천장이 높아져 탁 트인 느낌을 준다. 벌집모양으로 쌓은 중정 벽이 바깥 시선을 가려주고 빛과 바람을 들인다. 남궁선 제공
1층에도 다락ㆍ옥상 필요해요

아이와 반려견이 있는 아들 내외는 1층에, 밝은 집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빛이 더 많이 들어오는 2층에 자리 잡았다. 중정은 분리된 두 가구가 시각ㆍ청각으로 소통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1층 중정에서 나는 아이 목소리는 2층에 있는 할머니의 거실까지 타고 올라온다. 할머니는 1층 중정에서 아이와 강아지가 노는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정을 뺀 나머지 공간은 완전히 독립돼 현관문도 따로, 다락과 옥상정원도 따로다. 독립성을 강조한 것은 떨어져 살다가 모인 사람들이 통상 갖는 불안함 외에, 향후 가족 구성 변화를 염두에 둔 것도 있다. 두 가구 중 하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때 한 층을 임대로 내놓는 경우를 생각한 것이다.

건축가는 다락과 옥상은 윗층 소유라는 통념을 깨고 두 가구 모두 다락과 옥상을 가질 수 있도록 계단 설계에 중점을 뒀다. 1층에 난 계단은 동쪽 다락과 옥상으로, 2층에 난 계단은 서쪽 다락과 옥상으로 바로 연결된다. “두 개의 계단이 가위자로 교차된다고 해서 ‘가위계단’이라고 불러요. 1층과 2층이 내부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인데, 처음엔 여기도 막을까 하다가 혹시 모르니 문을 하나 달았습니다. 나중에 불필요해지면 언제든지 막을 수 있으니까요.”

2층에서 옥상정원으로 통하는 계단. 세대마다 각자의 다락과 옥상을 갖도록 가위자 형태의 계단을 설계했다. 남궁선 제공
2층에서 연결되는 서쪽 옥상정원. 텃밭을 일구거나 마을 주민들과 모임을 갖는 데 사용하고 있다. 남궁선 제공
2층에서 연결되는 다락. 할머니 취미공간이자 손녀 딸의 놀이공간이다. 남궁선 제공

이 문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건 다섯 살 난 딸이다. 아침이 되면 계단을 통해 할머니 집으로 올라와 아침을 먹고 유치원에 간 뒤 저녁 때 다시 올라와 놀아 달라고 보채는 게 일상이다. 손녀의 방문이 늘 반가운 할머니는 “이 문 없었으면 우리 손녀 너무 힘들 뻔 했다”며 웃었다. “이 집 전체를 다 이용하는 건 손녀뿐이에요. 평소엔 제 쪽 다락방에 와서 저를 불러 그림 그리고 놀아요. 그런데 친구가 놀러 오면 저희 집 다락방으로 데려가더라고요.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거겠죠.”

옥상정원엔 새파란 인조잔디를 깔았다. 할머니는 여기에 작게 텃밭을 가꾸고 이웃 주민들과 모임을 갖기도 한다. 얼마 전 추석 때는 보름달을 보며 옥상정원에서 맥주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사온 뒤 아이의 아토피는 저절로 나았다.

건축가는 중정을 “일종의 광장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전세값 폭등으로 같이 집 짓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때일수록 프라이버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해요. 거주자들이 필요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질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로쪽에서 본 빛우물집. 내부 중정을 통해 선택적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남궁선 제공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건축 개요

대지 위치: 경기 성남시 운중동

대지 면적: 224.40㎡

건물 규모: 지상 2층

건축 면적: 111.91㎡

연면적: 168.82㎡

건폐율: 49.87%

용적률: 75.23%

최고 높이: 9.97m

공법: 기초-철근콘크리트매트/ 지상-철근콘크리트

구조재: 벽-철근콘크리트 / 지붕-철근콘크리트

설계: 조인호 애스크건축

빛우물집 동서 단면도.
빛우물집 1층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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