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적응을 잘하나요?”

‘신들의 섬’ 발리에서 만난 트리스나가 물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서울에 6개월 정도 머물렀던 그녀는 한국 사람들이 신기했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부터 영상 30도가 넘어가는 여름까지, 별 이상 없이 견디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하는 트리스나가 더 신기해 보였다. 발리는 1년 365일 24~30도를 오르락내리락한다. 한국처럼 날씨가 급변하면, 발리는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새삼스레 우리의 적응력이 사계절이 선물한 특별한 능력처럼 다가왔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약 5,100만명. 중국 14억, 인도 12억에 비하면 소박한 수치다. 취재 다닐 때, CEO들에게 자주 듣던 말 중 하나가 “우리나라는 시장이 너무 작아서 힘들다”라는 말이었다. “1억명만 되어도 내수 시장이 받혀줄 수 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브루나이에 취재를 갔다. 명절에 왕궁을 방문하면 국왕이 용돈을 주는 나라, 리터당 기름값이 껌값보다 저렴한 나라, 대학까지 교육비가 무료인 나라로 알려진 나라다. 지상천국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만난 사업가들은 나를 붙들고 “한국은 좋겠어요. 시장이 되잖아요. 브루나이는 인구가 작아 비즈니스를 해볼 수가 없어요”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2015년 기준 GDP가 2만8,000달러에 이르지만, 브루나이 인구는 겨우 42만여 명. 브루나이 입장에서 보니, 우리나라는 거대한 시장을 가진 나라였다.

여행지에서 식사할 때마다 “밥으로 먹는 게 뭐예요? 이게 반찬인가요?”라고 물으면, 질문받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나라처럼 밥과 반찬을 확연하게 구분하고, 반찬을 다양하게 차리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다.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대신 한걸음 떨어져 보면, 하나씩 눈에 띈다. 무엇이 다른지도 보이고,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도 깨닫는다. 여행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우리가 가진 경쟁력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나누다 ‘먹거리’로 방향이 흘렀다. 몸에 좋은 삼계탕과 채소 가득한 비빔밥, 지글지글 고소한 맛의 삼겹살, 구수한 막걸리의 매력에 빠진 외국 친구들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유명 가이드북 출판사인 론리플래닛의 세계음식을 다룬 책 ‘푸드러버’에서는 “한국에서 ‘짜릿하고 원기 왕성하다’는 말은 민족성과 음식, 두 가지에 해당하는 말”이라며 “한식은 아시아의 두 음식 강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지만 독자적으로 발달했다. 짧은 시간 동안 센 불에 볶아내는 중국식 전통 조리법을 거의 차용하지 않았고, 일본의 세련된 상차림에도 최소한의 관심만 보인다.”고 한식을 소개했다.

드라마 대장금 이래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올가을에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는 식당 가이드인 미쉐린 가이드 서울 리스트도 발표될 예정이다. 이런 추세에 맞춰 정부에서는 전통 음식을 세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를 여행하며 체험관을 종종 만났다. 지자체에서는 전통 음식 체험관을 짓고 역사와 문화로 가득 찬 전통 음식을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도 잘 모르고 있는 역사와 문화 속 음식들을 꺼내고 접할 수 있어 반가웠다. 그런데 좋으나 발걸음이 가지는 않았다. 문턱이 높다고 해야 할까. 어렵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지난 7월 햄버거 하나 맛보기 위해 3시간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쉐이크쉑 버거 열풍이다. 요즘 세대에게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의 문화를 먹는 동시에 재미를 경험하는 놀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데이비드가 생각난다. 한국과 일본, 중국을 오가며 영어를 가르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밥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귀여운 동그라미에 여러 맛이 다 담겨 있잖아. 가격도 싸고”라고 대답했다. 간단한 답이었지만, 데이비드의 한 마디에 열쇠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채지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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