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닷컴이 ‘박권일의 글쟁이 페달’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자전거에 지독하게 중독된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가 써 내려가는 두 바퀴 이야기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 드립니다.

자동차 운전자들이 “왜 자전거가 차도로 다니냐”고 화를 낼 때마다 농반진반 드는 생각은, 자전거라는 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차’로 말이다. 혹은 자전차를 자전거와 같이 복수 표준어로 등재해야 한다. 자전거나 자전차나, 어차피 한자로는 똑같은 글자(自轉車)고, 의미도 동일하다. 자전거가 아니라 자전차였다면, “자전거도 도로교통법상 엄연히 차에 속하고요, 원칙적으로 차도로 다녀야 하고요” 운운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게 아닌가. 자전차는 차니까 차도로 다니는 거다. 리어카가 ‘카(car)’니까 차도로 다니는 것처럼.

자전거의 도로 공유 문제에 대해 할 이야기가 산더미지만,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자. 분명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을 테다. 오늘은 한국일보 독자와 첫 만남이니, 자전거에 대한 찬양으로 운을 떼려 한다. 왜 나는 자전거를 타는가. 왜 그토록 자전거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계기는 한 권의 책이었다. 기자 일을 잠깐 쉬던 시기, 우연히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읽게 됐다(스러운 이 제목에 낚인 분들이 나 말고도 아마 꽤 있었으리라).

이반 일리히, 박홍규 역,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 책은 팸플릿이라 해도 될 정도로 짧은 분량인데 원제는 ‘에너지와 공평(Energy & Equity)’이다. 1974년에 출간되었으니 내가 한국어판을 샀던 때로 쳐도 30년이 넘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반 일리히의 주장은 전혀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류의 이동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지면서, 생산된 에너지는 극소수 계급에게 집중되고 생태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었다. 물론 거칠고 나이브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에너지 불평등과 속도중독 사회에 대한 비판은 통렬했다. 일리히의 대안은 급진적이지만 그렇다고 “도시문명과 소비의 상징인 냉장고를 전부 버리자”는 식의 관념적이고 퇴행적인 망상은 아니었다.

그의 제안은 사적 교통수단(내연기관)에 대한 규제, 공공교통수단의 전폭적인 확충, 그리고 단거리·중거리 이동에서 자전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일리히도 지적하고 있는 바, 자전거는 “인간이 만든 가장 효율적인 이동수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탈것이다. 1마일 당 소비 에너지를 보면 인간의 걸음이 100칼로리, 자동차가 1860칼로리인 반면 자전거는 불과 35칼로리다. 저 책 내용은 자동차 산업이 승승장구하던 1970년대엔 황당하게 들렸을 수 있지만 2016년인 지금 읽어보면 너무나 상식적이다. 보라. 정도의 차이야 있겠으나 일리히의 주장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오늘날 구체적으로 추진하거나 진지하게 고려하는 정책방향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나의 첫 자전거 다혼 보드워크

책을 읽고 나자 어디에나 널려 있는 자전거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선풍적 인기였던 접이식 미니벨로 한 대를 샀다. 페달을 굴려 박차고 나가는 순간, 까맣게 잊힌 감각이 세포를 깨우며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맞아. 자전거는 이런 느낌이었지.’ 그날 바람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나는 어이없이 자전거에 중독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 생애 가장 극심한 중독이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을 정도다. 나는 30대 초반까지 하루 두 갑 반씩 담배를 피우던, 그야말로 깨어있는 동안은 계속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체인 스모커였다. 샤워를 하며 담배를 피운 적도 있다(그게 가능하냐고? 약간의 요령만 있으면 가능하다!) 난 새해마다 습관처럼 금연선언을 하던 친구들에게 ‘이 좋은 걸 왜 끊냐’고 하던 애연가였다. 하지만 생애 첫 로드바이크를 구입했던 날 담배와 작별했다. 내 삶의 어마어마한 시간을 점유했던 어떤 사물은 마치 혁명처럼, 한날한시에 다른 사물로 교체되었다.

담배 중독에서 자전거 중독으로

당위에서 시작된 실천은 그것만으론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가 정말로 즐겁지 않았다면 몇 번 타다가 쳐박아 두거나 팔아버렸을 게 틀림없다. 나에게 자전거는 수단이면서 목적이고 끝없는 쾌락을 생성하는 장치다. 오르막의 고통을 대가로 내리막의 쾌락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그 쾌락은 주이상스(jouissance 고통 속의 쾌락)에 가깝다. 또한 자전거는 모일수록 즐겁다. 서로 바람을 막아주며 협력하면 자전거는 더 빨라지고 더 멀리 갈 수 있다. 인간의 힘을 온전히 구동부로 전달하기 위해 한 세기 넘게 고안되고 개량된 이 기계의 기능미는 볼수록 경이롭다. 산업 여건상 자동차처럼 대량생산이 안되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아름다운 자전거들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는 옳은 물건도 있고 아름다운 물건도 있고 즐거운 물건도 있지만, 옳으면서 아름답고 즐거운 물건은 극히 드물다. 자전거는 그 어려운 걸 해낸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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