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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바머’ 카진스키

입력
2016.09.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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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9월 19일

'유나바머' 카진스키의 장문의 기고문이 1995년 오늘 미국 신문에 실렸다. 자료사진
'유나바머' 카진스키의 장문의 기고문이 1995년 오늘 미국 신문에 실렸다. 자료사진

테러리스트 시어도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1942~)의 기고문 ‘산업사회와 미래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가 1995년 오늘(9월 19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터에 실렸다. “산업혁명과 그 결과는 인류에게 재앙이었다. 그것들 덕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평균 수명은 대폭 늘어났지만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 존재는 비천해졌다. 심리적 고통은 광범위하게 확산됐고,(제3세계의 경우 육체적 고통도 함께) 자연에도 심각한 해악을 끼쳤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다”로 시작하는 3만5,000여 단어의 글. 반과학ㆍ반기술의 격정적인 메시지가 담긴 그의 글은, 더러 수긍할만한 내용도 있지만, 그 자체가 그의 마지막 테러였다. 그는 신문사가 자신의 글을 신문에 싣지 않으면 폭탄 테러를 계속하겠다고 협박했고, 신문사들은 FBI와의 협의 끝에 그의 요구를 수용했다.

‘유나바머(Unabomber)’ 카진스키는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에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해 20세에 졸업했고, 미시간대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딴 뒤 25세이던 67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최연소 조교수가 됐다.

그는 2년 만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가족과 함께 3년 남짓 지냈다. 73년 몬태나 주의 숲 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에서 문명을 등진 채 5년 가량 혼자 살다가 78년부터 우편물 폭탄 테러를 벌이기 시작했다. 대학 연구소와 공항이 주요 타깃이어서 유나(un+a)바머라 불린 그의 16차례에 걸친 테러로 3명이 숨졌고, 23명이 실명 등 부상을 입었다.

카진스키는 신문에 실린 글의 요지와 문체가 형의 것과 유사하다는 동생의 제보로 96년 4월 체포됐다. ‘정신이상’을 변론 전술로 삼자는 변호인단의 제안을 일축하며 재판에서 자신의 논지를 이성적으로 피력, 98년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체포 이전, 또 수감 중 그는 기고문과 유사한 논지의 많은 글을 써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미국 정부는 책 출간을 한사코 막으려 했지만 연방법원은 언론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쳤고, 대신 인세 전액을 피해자와 유족 보상금으로 쓰도록 판결했다. 그를 추종하는 일부 반문명 근본주의자들은 그의 도드라진 이력을 앞세워 자신들의 유치한 이성을 감추려고도 한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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