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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

입력
2016.09.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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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우가 되냐는 중요치 않다. 어떤 사람이 되냐가 중요하다.” 얼마 전 모 방송국 뉴스에 출연한 배우 차승원 씨가 한 말이다. 그는 덧붙여 인생을 잘 산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고도 했다. 달리 말해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배우들의 인터뷰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배우가 사람을 연기하기에 그런 게 아니라 연기 또한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배우가 연기하는 배역 가운데 좋은 사람도 있기에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선한 이든 악한 이든 간에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사람 아닌 배우는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좋은 배우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 관건이라는 의미다.

그럼, 좋은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공자라면 나이 서른이면 독립적이고도 자율적 존재로 우뚝 설 줄 알고, 마흔이면 미혹되지 않는 이를 좋은 사람의 조건으로 제시했을 성싶다. 맹자는 하늘의 선함을 잘 간직한 이를, 순자는 타고난 악한 본성을 예로 잘 다스린 자를 꼽았을 듯하다.

노자와 장자는, 모르긴 해도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타고난 본성대로 살 줄 아는 이라고 했을 것이다. 평등한 공동체를 일구고 살았던 묵자는 기술을 날로 익혀 노동 역량을 제고하며 끊임없이 유능해지고자 하는 이를, 법대로의 삶과 사회를 외친 한비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주어진 본분 이상이나 이하로 행치 않는 자를 좋은 사람으로 규정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이 좋은 사람의 조건임은 결코 아니다. 이는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잘 나갔던 유가, 도가, 묵가, 법가의 주장을 근거로 좋은 사람의 조건을 재구성해본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인류의 그 유장한 역사 속에 제시됐던 갖은 덕목 중 어느 하나라도 갖췄다면, 그들도 어느 대목에선 그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만큼 좋은 사람의 조건은 다종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사람의 조건을 ‘배제’의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다. ‘어떤 좋은 덕목을 갖춰야 비로소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란 물음 대신 ‘무엇이 없어야, 또는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식으로 질문하는 것이다. 가령 맹자의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곧 ‘불인지심(不忍之心)’ 관련 논의가 그것이다.

그는 마음으로 타인을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겸손하고 양보할 줄 알고 의로울 줄 알면 차마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 마음을 발해야 사람일 수 있다고 단언키도 했다. 곧 불인지심이 없으면 오만과 불손과 불의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게 되니, 좋은 사람은커녕 사람 자체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다” 역시 좋은 사람의 조건 가운데 하나였다. ‘춘추좌전’과 ‘사기’를 보면, 군주가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을 기어코 하고자 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명분의 하나가 웃음거리가 되지 말라는 충언이었다. 예컨대 명분도 없고 질 가능성도 큰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든지, 사태에 얽힌 복잡한 맥락을 보지 못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처리하려 한다든지 할 때, 신하들은 그리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며 말리곤 하였다. 그러면 군주들은 대개 그만두곤 했다.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든 말든, 자기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우리네와 참으로 비교되는 모습이다.

또한 ‘남들의 시선을 뭐하러 의식해’ 식으로, 또 ‘그건 내가 신경 쓸 바 아니고’ 식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과도 대비된다. 지인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면 무척 부끄럽고 힘들어 할 줄 알면서도, 막상 천하 사람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엔 둔감하다. 이런 면에서,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안 하려 하는 것” “그런 배려를 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는 차승원 씨의 말은 값지다. 그렇게 살아가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고백은 의미 깊다. 그 말이 다만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에게만 해당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다 무엇이기 전에 사람이다. 누군가의, 어딘가의 무엇이기 전에 먼저 사람이다. 정치인이기 전에, 법조인 언론인 관료 재벌 경찰 검찰 등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노년이나 청년,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호남 출신이나 영남 출신, 한국인이나 외국인이기 전에 모두가 사람이다. 사람이기에 대통령도 되고, 의원이나 검찰도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면서 누군가의, 어딘가의 그 무엇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좋은 사람이 돼야 좋은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단적으로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부모, 자녀, 며느리, 사위이기 전에 먼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가족이 될 수 있다. 마침 한가위다. 가족의 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애써 안 하는, 그렇게 배려하는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 되길 소망해본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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