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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미니멀리즘 시대의 출산

입력
2016.09.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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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다. 간단히 말해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더 행복하다는 뜻이다.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각광받던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반작용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힐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제는 애초에 상처받는 일 자체를 거부하는 단순한 삶을 원하고 있다. 우선은 생각을 버리고 다음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며 나아가서는 허울뿐인 인간관계도 버린다. 꼭 필요한 것만 취하고 부수적인 모든 것들을 없애서 지극히 간단명료한 삶의 구조를 만들어 놓는 일, 그 위에서 최소한의 ‘액션’만을 취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이 반갑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오래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온 까닭이다. 머리가 좋지 못해 복잡한 것들은 잘 모르고 평범한 외모 덕에 화려한 디자인의 옷이나 장신구를 해 본 적도 별로 없다.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한 넓은 인맥도 나와는 먼 얘기다. 작은 집을 산 탓도 있지만 개인적인 취향도 더해져 우리 집의 물건들은 대부분 작고 디자인은 단순하다. 요즘 유행하는 ‘냉장고 파먹기’도 나에게는 그저 오래된 습관일 뿐이다. 게다가 양문형 냉장고는 절대 들이지 않겠다는 게 내 방침이기도 하다. 이러한 나의 삶의 방식이 나만의 별난 취향 탓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니멀 인테리어, 밥상, 가치관 등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은근히 뿌듯하다.

죄송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출산도 마찬가지다. 삶을 대하는 방식이 이럴 진대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을 리 없다. 한 명의 아이만으로도 이미 단순했던 내 삶은 충분히 복잡해졌다. 그런데 둘째라니 상상이 안 간다. 하지만 나의 이런 가치관에 대해 ‘미니멀’ 어쩌고 하면서 양가 부모님께 설명해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매번 둘째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저 기를 형편이 안 된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이 말도 거짓은 아니다.

부모님과 나의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정부, 혹은 기성세대와 요즘 젊은 부부들 생각의 차이와 일치한다. 과거에 비하면 표면적으로는 지금이 아이를 기르기 수월한 세상으로 바뀐 듯 보인다. 출산과 육아에 드는 비용 일부분을 나라에서 지원해 주고 어린이집은 모두 무상이다. 예방주사도 대개는 무료이며 공공 놀이방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육아는 더 힘들고 출산율은 바닥이다. 수많은 저출산 정책이 무색하리만큼 그 수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이렇다. 행복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의적인 차원에서 보면 옳지 못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시대의 흐름이 이렇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자던 과거에도 다산이 행복이라 여기던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기는 어려웠지 않았던가. 어불성설이지만 누군가가 내 아이를 전적으로 키워주고 모든 비용을 대주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나는 둘째를 가질 생각이 없다. 그러니 출산 장려 정책 역시 이만큼 파격적이지 않은 이상 실효성이 미미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니멀한 세상을 꿈꾼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부탄의 인구수는 70만명을 웃돈다고 한다. 부탄은 주요 수익 창출구였던 관광객 수를 스스로 제한했고 거대한 댐은 건설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심지어 국왕은 왕궁이 너무 크다며 작은 집을 짓고 산다. 모두 미니멀 라이프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환경과 역사가 다른 만큼 부탄의 행복론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에 대한 해법을 반드시 ‘출산과 인구수’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내 아이가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갈등하기를 원치 않는다. 미니멀한 세상에서 결코 미니멀하지 않은 행복을 느끼며 살기를 바란다. 이게 바로 내가 둘째를 가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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