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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국제주의자 제인 애덤스

입력
2016.09.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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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9월 6일

제인 애덤스는 20세기초 사회주의자들도포기한 국제주의로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 위키피디아.
제인 애덤스는 20세기초 사회주의자들도포기한 국제주의로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 위키피디아.

호전적 민족주의자들이 판치던 19세기~20세기 초 유럽에 베르타 폰 주트너(1843~1914)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제인 애덤스(Jane Addams, 1860~1935)가 있었다. 주트너가 저널리스트로서 보고 겪은 전쟁의 야만을 고발하며 당위로서의 평화를 호소했다면, 박애적 사회운동가 애덤스는 봉사 현장에서 경험한 휴머니즘적 연대의 갈망과 가능성을 발판 삼아 전쟁으로 치닫던 국가ㆍ민족주의의 차별과 배타를 넘어서고자 했다. 둘은 사뭇 상반된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주트너가 1차대전 직전 숨진 뒤 애덤스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광기의 1차 대전 전장에서 평화의 고독한 깃발을 들었다.

애덤스는 1860년 9월 6일 태어났다. 사업가이자 정치인이던 아버지는 친구 링컨이 암살당하자 그와 나눈 편지를 어린 딸에게 보여주며 링컨의 이상과 순교자적 헌신에 대해 교육했고, 1872년 숨진 이탈리아의 정치인 주세페 마치니가 이탈리아 통일과 부흥, 자유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설명했다고 한다. 유년의 그는 일요일마다 교회예배 뒤 부모와 함께 음식 바구니를 들고 가난한 이웃을 만나러 다녔다.

록포드 여대를 졸업한 그는 유럽 여행 중 대도시 슬럼의 참상과 함께 세계 최초 빈민 복지센터인 런던 ‘토인비 홀’을 보고 귀국, 1889년 시카고 외곽 할스테드 거리에 ‘헐 하우스’라는 복지관을 세웠다. 이민자를 돕고 그 아이들의 공부와 제본 양재 요리 등 기술ㆍ직업 교육을 시켰다. 언어와 문화, 국적이 다른 그들이 헐 하우스의 삶을 통해 화합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독신이었던 그의 집도 헐 하우스였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터지면서 그의 평화운동도 시작됐다. 그는 헐 하우스의 평화가 국가 사이에서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1907년 저서 ‘평화의 새로운 이상(Newer Ideals of Peace)’에서 그는 국가가 국가ㆍ군사주의를 극복하고 인도적 국제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5년 여성평화당(WPP)을 창당해 집회를 열었고, 네덜란드 헤이그 여성국제대회에 참가,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참전국 정치인들을 설득했다. 전후인 1919년에는 ‘여성국제평화자유연맹(WILPF)’을 조직, 10년간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주트너에 이어 1931년 여성으로선 두 번째 노벨평화상을 탔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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