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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도토리는 싸가지가 없다

입력
2016.09.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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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버릴 게 없지요. 귀엽기로 따지면 생김새나 이름이나 따라올 것 없지요. 야물딱져서 장난감이나 염주를 만들 때 뽑혀가지요. 속은 또 어떤가요. 열거하기에도 입이 아플 정도로 몸에 좋다지요.

그렇게 타고 났으니 하는 것도 당차지요. 나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숲을 벗어나 행길로 남의 애비 손으로 아이의 손으로 옮겨 다니지요. 거기서 멈추면 진정한 도토리가 아니지요. 한밤중 방바닥에 덩그마니 놓여서도 기어이 숲이 아닌 이곳도 재밌다는 표정을 완성하지요. 싸가지가 없다고요. 원래부터 생겨먹은 게 이런 걸 어떡하나요. 에고 저걸, 도로 집어넣고 싶은 나무와 건넛산으로 날고 싶은 도토리의 밀당, 부모 자식 간 사정은 인간이나 도토리나 마찬가지니 우리도 딱히 할 말은 없네요.

도토리는 ‘향약구급방’(1417년)에 ‘저의율(猪矣栗)’, 즉 돼지의 밤(돼지가 즐겨먹는 밤)이라는 낱말로 처음 등장하지요. 실제로 멧돼지는 다람쥐만큼 도토리를 좋아한다고 해요. 북한산 아래 살던 작년 겨울에도 멧돼지들이 사람동네까지 내려오는 일이 있었지요. 어미 멧돼지가 아기 다섯과 함께 먹이를 구하러 내려왔는데 어미 멧돼지는 사살됐어요. 그 다음날 엄마와 왔던 길을 똑같이 가보는 아기 멧돼지들을 보았다고 해요.

사람동네까지 내려오는 멧돼지들을 탓하기 전에, 산에 가시는 분들, 도토리 싹싹 주워오지 마시길! 그들의 식량이에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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