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결혼 후 곧장 대학원 진학을 하는 바람에 경제적 자립도 완전히 되지 않아 아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혼 후 한동안 아이를 낳지 않자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의 처지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계속 공부 중이었고, 내 파트너도 결혼 전부터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다. 결혼하고 4년 만에 첫 아이가 생겼다. 상황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이제는 하나 정도 낳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혼하면 누구나 기르는 것이 아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그저 ‘가볍게’ 생각했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단지 누군가의 아빠가 된다는 것을 훌쩍 넘어서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깨달았다. 나는 생업에 뛰어들었고, 결국 대학원을 완전히 끝마치지 못했다. 대학원에도 육아휴학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냥 휴학하면 되는 일이지만 내가 다닌 대학원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성악을 하던 파트너의 경우는 더 큰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태아가 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수술로 아이를 낳았는데, 발성을 위해 사용하던 근육의 감각이 수술로 인해 달라져 버렸던 것이다.

아이를 갖기로 한 것도 우리의 선택이었으므로 우리의 삶은 우리가 바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출산 전만 하더라도 그 선택의 무게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이를 길러보기 전에는 육아의 무게가 이 정도일지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도 첫 아이 출산 후 부모님뿐 아니라 정말 주변의 모든 사람이 둘째는 언제 가질 것인지 물어왔다. 우리 부부는 둘째 계획이 없었지만, 다른 집 아이들이 동생들과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늘 엄마, 아빠가 놀아주기만을 기다리는 내 아이가 서글퍼 보여 마음이 흔들렸다. 게다가 키워본 경험도 있으니 둘째는 좀 더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도 있었다. 부담스러웠지만, 그런 합리화를 통해 우리는 또 아이를 가졌고, 두 달 전에 둘째가 태어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둘째라면 조금 더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늦둥이를 키운다는 낭만은 10년 후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별로 없다. 매일 매일의 일상은 전쟁 같다. 우리는 첫 아이 때보다 나이가 더 들었고, 일도 많아졌다. 더욱이 파트너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태다. 출산 후 파트너는 제대로 잠을 잔 날이 별로 없다. 이번에도 파트너는 수술로 아이를 낳았고, 첫 아이 출산 후 겨우 회복했던 감각을 다시 잃어버렸다. 파트너는 출산 휴가 중이라지만, 만약 휴가(vacation)가 텅 빈(vacant)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파트너의 하루는 조금도 텅 비어 있지 않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둘째를 갖는다는 것은 첫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의 고통을 완전히 망각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제저녁, 피곤하다는 파트너의 어깨를 풀어주며 얼마 전 서점에서 본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이라는 제목의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책에는 “아이가 있어도 불행할 수 있지만 아이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파트너와 나는 우리는 ‘아이 하나만 있는 완전한 삶’을 구현했어야 했지만 이미 실패했으니, 이제라도 ‘아이 둘만 있는 완전한 삶’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완전한 삶까지는 아니라도 좋다. 내가 사는 지역의 소주 회사는 결혼한 여성은 회사에서 나가게 하고, 어떤 회사는 여직원의 출산휴가를 놀러 가는 줄 알고, 또 어떤 회사는 육아 휴직을 금수저 휴직이라고 부르고, 어떤 공무원은 전업주부가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것을 태업이라 생각한다고 하는데, 이런 반육아적 인식 속에서 어떻게 완전한 삶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 다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이가 운다. 나가봐야겠다.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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