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을 한달 앞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화훼상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화훼농가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화환이나 축하용 꽃의 단가를 내리기 위해 가격이 저렴한 수입 꽃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쪽지예산’ 결론 못내린 권익위
주무부처ㆍ민간 기업체 문의에
민감한 사항은 “검토 중”어물쩍
변호사도 구체사항 자문 난색
“법 시행 전에 이런 적 없었다”
추상적 문구 해석 어려움 호소

“국회의원‘쪽지예산’은 부정청탁인가요”(기자)

“공익 목적의 민원 청탁을 불법으로 보긴 어렵죠.”(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

“의원과 관계된 특정 단체 지원 목적이면요?”(기자)

“자세한 내용을 봐야겠지만 부적청탁에 해당할 수도…”(권익위)

“A의원이 친척 땅 근처로 도로를 내는 예산을 땄다면요?” (기자)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판례가 좀 축적돼야 합니다.”(권익위)

최근 논란이 된 국회의원의 ‘쪽지예산’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부정 청탁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권익위 답변이다. 딱 부러지는 대답을 못한 채 결국 판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한달을 앞두고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에 걸려오는 문의 전화는 하루 수백 통.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 기관인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체에서도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냐’는 질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권익위조차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쪽지예산’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검토중”이라거나“사안별로 다르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좀 더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판례가 쌓여야 한다”는 대답을 내놓는 것이다. 이 때문에 권익위가‘기승전-판례’만 얘기한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로펌 변호사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법률 자문 증가로 ‘특수’가 예상돼 기업 고객을 잡기 위해 강연, 세미나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자문 요청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로펌 변호사는 “시행이 임박할수록 상담 내용이 구체적이지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워 ‘정확한 것은 판례를 받아 봐야 한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률상담이‘기승전-판례’로 마무리되기 일쑤인 것은 김영란법이 추상적인 문구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뤄지는 관행 전반을 타깃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획일적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영역이 많아 판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많은 법들이 시행 초기에 혼란이 있긴 하지만, 시행도 하기 전부터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며 “살인 사건을 다루는 형법도 한 사안을 놓고 해석이 엇갈리는데,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 김영란법 경우 곳곳에서 논란이 일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판례가 쌓여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기까지 2,3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안의 모호함으로 인해 권익위도 말 못할 곤욕을 치르고 있다. 권익위는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김영란법 해설집을 발간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하루에 걸려오는 수백 통의 전화에 일일이 응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전국에서 쇄도하는 설명회 요청에 직원들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며 “이번 주 중으로 직종별 김영란법 매뉴얼을 발간할 예정인데, 여러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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